인근 주민들 항의도 잇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사흘째인 12일 서울 삼성동 자택에 모습을 드러내자, 사저 앞에 운집해 있던 지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연호했다. 사저 주변은 지지자들,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도하기 위한 취재진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하루 종일 혼란스러웠다.
남색 코트 차림에 평소처럼 올림머리를 한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7시40분쯤 검은색 에쿠스 차량을 타고 사저에 도착했다. 사저 앞에서 봉은사로까지 200여m 골목길을 가득 채운 700명 가량(경찰 추산) 지지자들은 박 전 대통령의 차량이 보이자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일부는 “너무 억울하다”고 고함을 쳤는가 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차 안에서부터 이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차에서 내린 뒤에는 집 앞에 도열하고 있던 서청원 최경환 등 자유한국당의 친박계 의원, 허태열 이병기 등 전직 청와대 핵심 참모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짧은 대화를 나누는 여유도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들어간 이후에도 수 백명 지지자들은 자리를 지킨 채 애국가를 부르고 ‘탄핵 무효’를 외쳤다.
이날 사저에는 박 전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한 작업으로 분주했다. 오전 6시 40분쯤부터 장판을 가는 인부들이 속속 사저로 들어가 작업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난방기기와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 설치 작업이 속속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오전부터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쥐고 사저 앞에 결집했다. 오전 10시 6명이었던 지지자들은 오후 2시가 넘어서면서 500명 가량으로 불어났다. 인도에는 나라사랑동지회, 구국동지회, 산악회 등 이름으로 ‘박근혜 국민 대통령님 환영합니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사저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는 이종삼(64)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달려왔다”며 “박 전 대통령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지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 힘내시라”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며, 취재진을 향해서도 “거짓 보도하는 언론은 꺼져라” 등 소리를 질렀다. 사저 앞 상가 두 곳 옥상에 방송사 카메라가 설치되자 지지자들은 급격히 흥분하며 “카메라 치워라” “내려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취재진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사다리에 올라 사저를 촬영 중인 기자에게 달려들어 해당 기자가 사다리에서 떨어질 뻔한 아찔한 장면도 연출됐다. 일부는 인도에 앉아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을 향해 “종북좌파 신문사들 꺼지라”며 발길질을 하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도착이 임박하면서 이들은 7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지지자들 언행이 과격해지면서 인근 주민과 마찰도 발생했다. “집회 신고도 안하고 주말에 몰려와서는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하냐”고 사저 앞 주택에 살고 있는 이모(65)씨가 항의하자 지지자들이 “빨갱이”라며 몰려들어 싸움이 발생할 뻔 했다. 사저를 지나가던 주민 안모(46)씨는 "지지자들이 탄핵된 거에 분노하는 건 알겠지만, 이렇게 죄다 몰려와서 신고하지도 않고 상가를 점거하고 마이크로 시끄럽게 하는 건 불법 아니냐“고 항의했다. 주민 정모(34)씨는 “평화롭던 동네가 아수라장이 됐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탄핵으로 갑자기 대통령이 돌아오게 되면서 동네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고 했다.
경찰은 사저 주변에 10개 중대를 투입해 관계자 외 사저 접근을 막으며 취재진 주변을 둘러싸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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