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 원전 1호기에서 수소가스가 폭발하던 모습이 6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말로 수소가스가 폭발한 것인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유럽의 중대사고 전문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소가스 폭발이 아닌가 하여 일본 쪽에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중대사고 전문가인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느냐,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 원전에서의 수소가스 폭발에 대한 연구는 많이 있었지만,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기는 처음이라서 모두 당황했던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후 원자력 발전 분야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안전에 대한 의구심이 크게 확산했고, 최인접국인 우리나라는 더욱 심했다. 가동 원전에 대한 안전성 재평가와 향상 조치들이 취해졌고, 신규 원전의 안전성도 더욱 향상됐다. 각국의 원자력 정책은 매우 다양해져서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적극적인 원전 건설 국가, UAE 같은 신규 진입 국가, 영국 미국처럼 수 십년 만에 원전을 건설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독일이나 스위스 등과 같이 탈원전 정책을 채택한 국가도 있다.
후쿠시마 사고의 직접 원인은 미국에서 개발된 원전을 일본에 건설하면서 지진과 쓰나미가 빈발하는 일본 고유의 지질학적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데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원자력 안전을 과신하여 최상의 과학기술 지식에 근거하지 않고 중요한 의사결정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최초의 내진설계기준이 0.18g, 쓰나미 설계기준이 3.1m였는데, 이는 지진과 쓰나미가 드문 우리나라의 고리원전보다도 낮은 값이었다. 사고 후 일본에서 역사적으로 15m 이상의 쓰나미가 발생한 지역에서조차 설계기준이 5~10m이었던 것을 알고는 크게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원전을 운영하면서 내진설계는 꾸준히 보강하여 문제가 거의 없었으나, 소극적으로 대비한 쓰나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은 것이다.
사고 후 필자가 국내외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구호가 있다. 최상의 과학기술지식에 기반하여 ‘올바른 일을 제대로 하는 것’(Doing the Right Things Right!)이다. 해야 할 일을 잘 찾아내는 것과 이를 제대로 해내는 것이 모두 중요하다. 머리 좋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잘 찾아도 이를 이행하는 과정이 철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래서는 안심할 수준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도 미국 드리마일 원전 (TMI) 사고 후속조치를 제대로 이행했었더라면 대량의 방사능 누출을 일으키지 않고 수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 안전점검 등을 통해 50여 개의 안전성 향상조치를 도출하여 이행해왔다. 이에 따라 국내 원전들은 극한 자연재해와 중대사고에 대비한 안전성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더불어 필자가 후쿠시마 사고 직후부터 주장한 것이 최악의 자연재해와 중대사고 시에도 기능을 유지할 튼튼한 비상대응시설의 필요성이다. 각 원전부지마다 하나씩 구축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운전요원들이 원전을 지키면서 대응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행히 정부가 후쿠시마 사고 후속대책을 보완하면서 이 항목을 추가하였다. 이러한 안전대책이 최상의 과학기술지식에 기반하여 철저하게 이행되고, 원전 운영조직의 전문성과 안전문화가 뒷받침한다면, 중대한 원전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설령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그 피해를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인류 문명은 실패의 교훈을 반영하면서 발전해왔다. TMI 및 체르노빌 사고 후 20-30년 간 큰 원자력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도 사고의 교훈을 반영하여 안전성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이번 후쿠시마 사고의 교훈을 냉정하게 분석하여 원전 설계와 운영에 반영한다면 큰 사고 없는 100년을 달성할 수 있고, 그 사이 더욱 안전한 원자력 또는 다른 에너지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개발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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