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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를 울린 언어들

입력
2017.03.1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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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히 울었다. 그것은 언어에 불과했지만, 많은 이들의 분명한 신념과 사유가 담긴 음성이었기에, 나는 울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 판결문에서 우리에게 직관적이고 분명한 메시지를 주는 부분은 이랬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그것은 어떠한 여지도 없고, 생각할 틈도 주지 않는 단호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이 역사에 길이 남을 판결문 낭독에서 우리의 가슴을 가장 뭉클하게 만든 핵심적인 순간은, 최종 논거를 낭독하던 순간이었다.

헌법재판소에서 파면을 최종적으로 심사하는 까닭은 나라의 원칙을 규정하는 헌법으로 엄정한 논거를 적용해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직무유기라는, 어쩌면 애매하고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에 있어, 그 선을 넘었노라 판단하는 일은 법률적으로 많은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판결문의 초반부에는 그 한계가 드러나 있다. 증거가 불충분하다, 증거가 있지만 헌법으로 직무유기를 규정하기 힘들다 등의 고심이 담긴 문장들. 그것은 매번 '분명하지 아니하다'나,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나,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로 끝났다.

이것은 예견된 고심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어진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 부분에서 사실 관계가 인정된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판결문은 '피청구인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것인지' 판단하는 대목으로 들어선다. 청자들이 모두 마른침을 삼키게 했던 순간이었다.

여기서 판결문은 판단의 근거를 위해 이렇게 말한다.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 '국회와 언론 지적에도 불구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들을 단속해왔다' '피청구인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했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적 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 헌재가 인용의 가장 중요한 논거로 삼은 것은, 바로 거짓과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았던, 도저히 그 진위 여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지도자의 거짓말,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공작과 이어지는 탄압, 게다가 그것이 어떠한 처벌도 없이 지나가는 광경. 이 일련의 과정은 나라의 역사에서 반복되어 왔다. 이번 국정농단사태가 밝혀진 이후에도, 우리는 대통령이 사실을 부인하거나 수사 받지 않고 거부권을 행사하며, 주변 사람들이 '그런 사실이 없다' 나, '기억나지 않는다' 따위의 문장을 내뱉는 장면에 발을 동동 구르며 분개해 왔고, 심지어 그 노력이 성공해 권력자들이 처벌에서 비껴나갔던 선례들을 연상하며 불안감에 떨었다.

그러나 온 국민이 모두 지켜보고 있던 이번 역사적 순간에서, 우리나라의 헌법적 가치를 대표하는 헌법재판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거짓과 부인과 은폐, 이것은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입니다. 피청구인을 파면합니다.' 이것이었다. 법률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지도자가 범했던 거짓이 결정적으로 파면으로 이어졌노라 판단하고 이를 만방에 선포했다.

이런 순간이 또 있었던가. 이것은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사실을 밝히지 않고 대신 거짓을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든 범죄를 넘어선 헌법의 위배 사항이며, 그것을 '파면'이라는 극단적인 판결의 논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에게 똑바로 보여준 역사적 순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역사적 순간에서, 국민을 내내 우롱하고 기만하던 정의가 법의 이름을 빌려 우리 손으로 돌아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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