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박근혜 엄정 사법처리 주문
속으론 야권 쏠린 표심에 영향 촉각
“차기 정부에서 사면을” 솔솔
야권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내려진 10일 탄핵 이후 수순인 ‘사법 처리’를 두고 내부적인 고민에 들어갔다. 국민적 분노 여론에 따라 엄정한 수사를 주문하고 있지만, 사법 처리가 자칫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헌재의 탄핵 선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선을 이유로 미완의 특검 수사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며 “유신 시절부터 이어온 최순실 일가의 부정축재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야권의 대선 주자들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천명한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은 3일 합동 토론회에서 탄핵 인용 시에도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역시 이날 사법처리에 대해 “적법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원칙을 밝혔다.
그러나 야권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에 부담을 느끼는 목소리도 나온다. 불소추 특권을 잃고 자연인이 된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뿐만 아니라 구속까지 되면 보수층에서 동정 여론이 형성돼 야권으로 쏠린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야권의 핵심 당직자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이 수의를 입고 구속 당하는 모습은 보수층을 자극하기에 딱 좋은 장면”이라며 “범여권이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영남권 한 의원도 “요즘 지역구에 가면 ‘이미 죽은 사람을 부관참시까지 하려고 하냐’는 불만이 나온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사법처리까지 하자고 나서긴 어렵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가 선거 기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대선 후로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흘러 나온다.
하지만 야권이 섣불리 사법 처리 연기를 제안하다가는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큰 만큼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되, 차기 정부가 사면 등의 조치를 검토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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