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혐의 첫 공판준비기일
“박 대통령 조사도 못하고선
둘 사이 대화 인용 기재 문제”
삼성 5명 공소 사실도 부인
향후 특검과 치열한 공방 예고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동시에 공소장 자체의 위법성을 문제 삼으며 치열한 법리 공방을 예고했다.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이영훈)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등 삼성 임원 5명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특검이 작성한 공소장은 위법하다”며 시작부터 맹공을 폈다.
통상의 절차대로 특검이 먼저 뇌물공여 등 이 부회장에 대한 공소사실을 간략하게 밝히자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특검이 밝힌 공소사실 요지에 대해 의견을 말하기에 앞서, 공소장 자체의 문제점 밝히겠다”며 선전포고를 날렸다. 특검의 공소장이 ‘재판부가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검사가 공소장 이외에 다른 서류나 증거물을 제출해선 안 된다는 원칙’(공소장 일본주의)을 위반했다며 날을 세운 것이다. 변호인은 “특검은 공소장 각주에 이 부회장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SDI신주인수권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 등과 수사를 받은 사실을 기재했다”며 “마치 일찍부터 이 부회장과 삼성이 조직적이고 불법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할 계획이 있었다는 것처럼 재판부가 예단하도록 기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의 독대 자리에서 오갔다는 대화 내용을 특검이 직접 인용 부호를 써서 공소장에 기재한 것도 문제 삼았다. 변호인은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하지도 못했고 이 부회장은 대화 내용을 인정한 적이 없는데도 어떤 근거로 둘 사이 대화를 직접 인용 형태로 기재했는지 의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호인은 공소장에 이 부회장이 임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지시를 내렸고, 어떻게 범행을 공모했다는 것인지 특정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특검 측은 이에 발언권을 얻어 이부회장 측 변호인 주장에 반박하려 했지만 재판부는 서면 제출을 요구했다.
이 부회장 측은 “특검이 밝힌 공소사실은 인정하느냐”는 재판부 질문에 “이 부회장 등 5명 모두 공소사실 자체도 부인하겠다”고 못박았다.
이날은 정식 공판이 아니어서 이 부회장 등 피고인 5명이 모두 출석하지 않았지만, 200여 개의 방청석은 시민들로 가득 찼다. 1시간 가량 진행된 재판 도중 한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변호인단을 향해 “한마디만 하겠다”고 소리를 질렀다가 재판부로부터 퇴정 명령을 받는 일도 있었다. 재판부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건 알고 있지만 (이런 행동이)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드린다”고 경고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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