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 한 달 만에 3조 늘어 711조
은행권 심사 강화에 저축은행 대출 폭증
이자가 원금보다 많은 대부업체 연체채권 5만건 육박
취약계층 고금리 대출 위험만 커져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다시 빨라지고 있다. 정부가 은행권 대출심사를 강화하자 저축은행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며 부채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당국이 이달부터 상호금융 대출심사를 더 옥죄기로 해, 결국 대부업체 대출 수요만 늘어나는 것 아니냔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 한국은행의 ‘2월 중 금융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10조9,000억원으로, 전월보다 2조9,000억원이나 늘어났다. 이는 2010~2014년 2월 평균 증가액(9,000억원)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앞서 은행의 가계대출은 지난해 12월과 올 1월 각각 3조5,000억원, 1,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치면서 두 달 연속 증가폭이 감소, 가계부채 증가세에 제동이 걸렸다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1월 은행권 가계대출이 사상 최대폭으로 줄어든 데 따른 기저효과와 비교적 금리가 낮은 보금자리론 취급이 늘어난 것이 영향을 미쳤다”며 “3개월 만에 다시 증가 폭이 커진 만큼 가계부채 방향성은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월 은행 가계대출 중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이 전월 보다 2조1,000억원 늘어나면서 상승세를 주도했다.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도 8,000억원 증가, 상승세로 돌아섰다.
더 큰 문제는 은행 가계대출뿐 아니라 저축은행 가계대출 증가폭이 크게 확대된 데에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9조2,624억원으로, 불과 한 달 만에 9,775억원(영리목적 가계대출 증가액 신규분 4,692억원 포함)이나 늘어났다. 이는 지난해 12월 증가액(4,378억원)의 2배도 넘는 규모다. 신규분을 제외하더라도 증가액이 5,083억원을 기록해 작년 7월(5,924억원)에 이어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1월 예금취급기관 전체 가계대출 잔액도 909조5,281억원으로, 한 달새 8,524억원이나 증가했다. 이중 은행의 가계대출은 2조999억원 줄어든 반면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비은행권 가계대출은 2조9,412억원 늘어났다. 전체 가계대출에서 비은행의 가계대출 비중도 32%를 차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은행권 대출심사가 강화되면서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몰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가계대출 수요 자체가 줄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만 강화하다 보니 가계대출 증가세는 잡지도 못한 채 취약계층의 고금리 대출 위험만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보험사 주택담보대출의 고정금리 비중 목표치를 기존 25%에서 30%로 올리는 방안을 보험권과 논의 중이다. 분할상환 대출 비중 목표치도 45%에서 50%로 높일 계획이다.
실제로 대부업체에서 빌려준 대출 중 이자가 원금보다 더 많이 불어난 연체채권 건수도 5만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금융감독원이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대부업체 상위 20개사 대출 가운데 이자총액이 원금의 100%를 웃도는 대출은 총 4만6,042건이었다. 이중 대출원리금이 1,000만원 미만인 소액 대출이 70% 이상을 차지했다. 1,000만원 미만도 상환하지 못해 이자가 원금을 초과한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민 의원은 “대출규제가 강화하면서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취약계층이 고금리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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