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70)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은 실패를 몰랐다. 처음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2006년 WBC 초대 대회 4강, 2009년 2회 WBC 준우승을 이끌었다. 2015년 프리미어12 대회 때는 어느 누구도 사령탑을 맡으려고 하지 않자 ‘구원 투수’로 나서 한국야구를 정상에 올려놨다.
특히 김 감독은 메이저리거들이 출전한 WBC를 통해 한국 야구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며 ‘국민 감독’으로 불렸다. 의미심장한 명언도 여러 차례 남겼다. 2006년 “국가가 없으면 야구도 없다”고 했고, 2009년 “우리는 위대한 도전을 하려고 한다”며 울림 있는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노 감독은 모두가 고사하는 2017 WBC 지휘봉도 떠밀리듯 잡았다. 역대 최약체로 평가 받는 대표팀을 맡아 또 한번의 ‘위대한 도전’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안방에서 충격적인 1라운드 탈락이라는 결과를 냈다. 선수 선발부터 삐걱댔던 과정을 차치하더라도 경기 내용은 매우 무기력했고,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의 투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대표팀을 향한 온갖 비난이 쏟아지자 김 감독은 “선수들은 죄가 없다”며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통감하는 것”이라고 자신에게 모든 화살을 돌렸다. 이어 “나로서는 마지막 대표팀 감독인데 이렇게 돼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면서 “2009년 일본과 결승전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결승타를 얻어맞은 것이 항상 생각났는데, 이번 대회에서 이스라엘을 못 이긴 아픈 기억이 하나 더 생겼다”고 고개를 숙였다.
한국 야구의 위대한 도전사를 써온 김 감독에게 돌을 던질 이는 없다. 하지만 과거 대회와 달리 이번에는 선수를 향한 아쉬움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뼈 아픈 실책을 했다. 감독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해야 하는 자리다. 특히 선수 얘기는 더욱 그렇다.
김 감독은 지난 8일 통한의 이스라엘전 패배를 곱씹으면서 2루수 서건창(넥센)에게 비수를 꽂는 말 실수를 했다. 당시 이스라엘전 연장 10회초 2사 1ㆍ3루에서 임창용(KIA)의 공을 스콧 버챔이 2루수 왼쪽으로 빠지는 타구를 날렸는데, 2루수 서건창이 잘 쫓아가 잡았다. 하지만 1루에 던지지 못했고, 그 사이 3루 주자가 홈을 밟아 결승 득점을 올렸다.
이를 두고 김 감독은 “(부상으로 대회에 불참한) 정근우(한화)가 정상적으로 있었다면 그 내야 땅볼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근우가 이용규(한화)와 테이블 세터도 해주고”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사실 버챔의 타구 질을 볼 때 서건창은 분명 좋은 수비를 했다. 정근우가 있었다고 해도 처리하기 어려운 타구였다. 더구나 서건창은 28세로 한창 한국 야구를 이끌어가야 할 주인공인 반면 정근우는 35세로 더 이상 태극마크를 달기 어려운 나이다. 정근우의 공백을 아쉬워하기보다 서건창을 향한 격려의 한마디가 더 필요했는데 김 감독이 ‘불 필요한’ 말을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한 네덜란드와 2차전에서 0-5 완패를 당한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초보 국가대표 포수 김태군(28ㆍNC)과 유격수 김하성(24ㆍ넥센)의 기량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둘은 주전 안방마님 양의지(30ㆍ두산)와 유격수 김재호(32ㆍ두산)의 부상으로 대신 선발로 나섰지만 경험 부족의 한계를 드러냈다. 김 감독은 “김하성, 김태군은 김재호, 양의지와 (실력) 차이가 난다”고 했다. 이어 “그 선수들이 약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투타가 네덜란드에 밀렸다”고 수습했지만 한번 내뱉은 말을 다시 담을 수는 없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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