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캄프 누(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에서 열린 1998~9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알렉스 퍼거슨(76) 감독이 이끌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는 바이에른 뮌헨(독일)에 0-1로 뒤진 채 정규시간 90분을 마쳤다. 모두가 뮌헨의 우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후반 추가시간 테디 셰링엄(51)과 올레 군나르 솔샤르(44)가 연이어 두 골을 뽑아 거짓말 같은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 뒤 퍼거슨 감독의 첫 마디는 지금도 회자된다.
“믿기지가 않는다. 이 빌어먹을 놈의 축구가 뭔지.”
캄프 누에서 또 한 번 기적이 일어났다. 스페인 프로축구 FC바르셀로나는 9일(한국시간) 파리생제르맹(PSG)과 2016~17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홈경기에서 6-1 대승을 거뒀다. 지난달 15일 원정 1차전에서 0-4로 대패해 탈락이 예상됐던 바르셀로나는 믿기지 않는 뒤집기로 1ㆍ2차전 합계 6-5로 8강에 올랐다.
루이스 엔리케(47) 바르셀로나 감독은 경기 전날 공식 기자회견에서 “PSG가 파리에서 4골을 넣었다면 우리는 캄프 누에서 6골을 넣을 수 있다”며 “팬들이 경기장을 가마솥처럼 뜨겁게 만들어 줄 것이다”고 역전승을 예고했다. 그의 바람대로 9만6,290명의 바르셀로나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6골을 넣겠다는 말은 그저 희망사항으로 들렸다. 지금까지 챔스리그 사상 4골 차 뒤집기는 한 번도 없었다.
바르셀로나는 초반부터 강한 압박으로 PSG를 괴롭혔다. 전반 3분 루이스 수아레스(30)가 헤딩골로 포문을 열었고 전반 40분 PSG 자책골이 나왔다. 후반 5분 네이마르(35)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리오넬 메시(30)가 성공시켜 1골 차로 따라 붙자, 캄프 누가 술렁였다. 하지만 후반 17분 PSG 공격수 에딘손 카바니(30)가 찬물을 끼얹었다. 페널티 지역 중앙에서 대포알 같은 슈팅으로 쐐기골을 꽂았다. 바르셀로나는 1차전에서 득점이 없었기 때문에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남은 시간 3골을 더 넣어야 했다. 후반 42분까지 PSG의 8강행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후반 43분 네이마르가 프리킥을 직접 오른발로 감아 차 득점했다. 후반 45분 수아레스가 돌파하다가 엉켜 넘어져 또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네이마르가 차 넣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1골이 더 필요했다. 바르셀로나 골키퍼 테어 슈테겐(25)까지 골문을 비우고 달려 나왔다. 후반 50분 네이마르가 골문 중앙으로 공중 패스를 넣었고 세르히 로베르토(25)가 오른발을 쭉 뻗어 그물을 갈랐다. 캄프 누는 화산이라도 폭발한 듯 요동쳤다.
기적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투혼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골은 기술이 아닌 집념이 만들어낸 득점포였다. 카바니에게 골을 내준 뒤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2일 “휴식이 필요하다”며 올 시즌 뒤 바르셀로나 지휘봉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던 엔리케 감독은 지도자 인생에 평생 남을 명승부를 연출했다. 영국 미러는 “이것이 축구가 우리를 꿈꾸게 하는 이유다”라고 평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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