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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국가 안보는 동맹과 친구 사이에서 강화된다”

입력
2017.03.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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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현 북한대학원대학 총장)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현 북한대학원대학 총장)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현 북한대학원대학 총장)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두고 우리 기업을 상대로 매질을 하고 있는 와중에 북한이 또 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했다. 미국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드 장비를 오산으로 공수했다. 두 달 내에 작전운용에 들어갈 것이라면서 이례적으로 공수 현장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공개했다. 북한과 미국이 미리 의논이라도 한 것 같은 초현실적 장면이 전개되었다.

이럴 때 일수록 상황을 냉정하게 보고 앞길을 헤아려야 한다. 사드는 애초에 서울과 수도권을 방어하기 위해서 배치코자 했다. 그러나 수도권 방어능력에 대한 논쟁이 불거지자 전쟁 발발 시 후방에 도착하는 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는 논거가 제시되었다. 한국과 미국은 또 전적으로 사드는 방어무기이기 때문에 중국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사드 배치문제는 국내에서 친미- 친중 논쟁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가치체계에 비추어 이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불필요한 단세포적인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지금 정부와 미국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해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로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의 최대 수혜자는 오히려 북한이 될 수 있다. 한중 갈등이 고조되고 한반도의 긴장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세습정권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가 미국 주도의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유독 한국에 대해 거친 반응을 보이자 국내에서는 ‘대국답지’ 못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중국은 계속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이런 중국 앞에서 일치단결하여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대국과 소국의 관계로만 볼 수 없으며, 국민감정의 결집만으로 해결될 성격도 아니다. 사드는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미중 간의 전반적 세력 다툼 구도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가 한반도 지형에서의 군사적 효율성이나 방어의 합리성에 관한 논쟁을 넘어선 데는 연유가 있다. 미국은 한반도와 대만을 거쳐 필리핀으로 연결되는 서태평양까지를 일종의 내해(內海)로 간주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그 선을 넘어서지 못하면 해양으로의 영역 확장이 좌절된다고 본다. 미국과 중국의 세계전략이 정면충돌하는 현장에 사드가 있다.

미국은 만약 사드 배치에 차질이 생기면 중국을 봉쇄하는 서태평양 전선에서 한반도가 먼저 뚫리는 것으로 간주한다. 한편 중국은 14개국과 육지의 국경을 맞대고 6개국과 해양 경계선 분쟁을 안고 있다. 한반도에 중국 탐지용으로 간주되는 레이더가 설치되면 국경의 다른 방면으로부터도 봉쇄를 용인하는 결과가 된다. 소위 ‘중화민족 부흥의 꿈’이 나갈 길도 막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미 정부는 ‘위대한 미국’을 내세우면서 중국을 향해 4개의 창과 방패를 앞세우고 있다. 대규모의 국방비 증액, 중국 상품규제를 겨냥한 보호무역,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강화, 사드를 포함한 미사일 방어망(Missile Defense: MD)확충이 그 요체이다. 사드에 대한 중국의 거부가 더 강해지는 배경이다.

중국은 지난 20년간 한국의 MD 불참을 설득해 왔다. 북핵 6자회담에 공을 들인 것은 MD구축의 명분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국에게 강조했다. 특히 한국에 사드의 레이더를 배치하는 것은 미중 간 전략적 균형을 깨는 것이라며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북한의 핵 포기를 강압하거나 북미 간 타협을 유도하기 위해 전력투구하지는 않았다. 그 사이 북한의 거듭되는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MD의 명분은 축적되었다.

현 정부는 일단 사드를 선제적으로 배치하고, 후에 차기 정부가 이미 정해진 일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면 될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차기 권력으로 자부하는 세력은 선거를 앞둔 표 계산 때문인지 불투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권을 잡으면 미국과 다시 협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려면 지금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경우에도 중국이 사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만큼이나 미국도 기존합의를 바꾸려 하지 않을 것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강대국은 약자를 상대할 때 다자적 합의나 규범보다는 ‘일 대 일’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속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의 국제적 합의들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려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중국은 그 전부터 경제적 압박을 훨씬 거친 방식으로 동원해 왔다. 그러나 사드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의 다툼은 경우가 다르다. 한국에게는 사활적 안보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된 데다, 한미 양국 모두에게 동맹의 근간이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지구전으로 가면 한국이 버티기 어려울 것이고, 한국이 물러서면 미국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경제압박은 상대적으로 중국보다 한국에게 더 큰 고통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웃나라의 안보를 돈과 바꾸길 요구하는 중국의 위상도 지우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것이다. 금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 포럼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화려하게 강조한 세계화와 자유무역은 선전용 허구였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미국이라고 해서 체면이 서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게는 사드가 전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한 것임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대중 갈등의 전면에는 한국을 내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미국이 중국과 타협책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이 가운데 서 멍이 들어가면서도 미중 충돌을 버텨내는 한, 양측이 직접 타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래 보아온 강대국 정치의 원리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사이의 선택은 존재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단적 감정이 아니라 집단적 지혜이다. 시간은 걸리더라도 한반도를 뒤틀고 있는 대결 구조를 완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사드를 둘러싼 미국- 한국- 중국 사이의 딜레마는 북핵 문제에서 시작된 만큼 핵 문제를 다잡아 사드 문제를 풀어나가는 선순환에 들어가야 한다. 당장 실현되기 어려운 ‘북한의 핵 포기’같은 포괄적 요구보다 단계적 조건을 제시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북한의 핵ㆍ미사일 실험 중지 선언을 전제로 하여 사드의 작전운용 일정을 조정하는 방안에 대해 한국이 중국과 협의해야 한다. 배치 결정은 그대로 두되 핵심 장비인 X-밴드 레이더의 현장 배치는 일정 기간 조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 중지를 행동으로 보이면 한국과 미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로 연결시키고, 이어 북한이 핵 개발 자체를 중지하고 국제 감시를 수용토록 하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중국은 이런 타협을 성사시키는 부담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중국이 소극적이면 한국과 미국은 사드 배치 이상의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기 배치론자들은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는 것뿐 아니라 사전 억지효과가 있다고 강조하지만 북한이 실제 겨냥하는 것은 서울이다. 그런데 사드로는 서울을 방어할 수 없음을 한미 당국이 이미 밝혔다.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해서는 사드 보다는 압도적 응징능력을 증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만약 북한이 미사일로 한국이나 미국 또는 일본을 공격한다면 북한은 즉시 초토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마찰 관리에도 입지가 넓어질 것이다.

주한미군은 한국의 초청으로 와 있다. 동맹 운용에 있어 한국이 응분의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 현 정부는 ‘사드 기정사실화’가 아니라 협상과 명분 축적에 필요한 시간을 다음 정부에 넘겨주어야 한다. 국가 안보는 동맹과 적 사이보다는 동맹과 친구 사이에서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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