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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상대 필수 업무까지 올 스톱….발 동동 구르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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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상대 필수 업무까지 올 스톱….발 동동 구르는 기업들

입력
2017.03.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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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이어 삼성發 된서리

대면 줄이고 이메일ㆍ전화만

국회 입법 관련 대관 업무 등

개점 휴업 상태 기업들 딜레마

규제산업 통신업계는 특히 초조

“정부 협력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해”

/그림 1게티이미지뱅크

삼성의 한 계열사 대관(對官: 정부를 상대하는 일) 담당자 A씨는 요즘 정부부처에 발길을 뚝 끊었다. 적어도 한 달에 서너 번 관련 ‘출입처’를 찾아가 ‘주요 고객’인 직원과 식사를 하며 주요 정책 방향과 인사 등 각종 정보 파악과 민원을 상의해 왔지만, 이젠 꼭 용무가 있을 경우만 이메일을 보내거나 휴대폰을 집어 든다.

지난해 말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공무원들이 “올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는데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대관이 정경유착의 고리란 인식이 더 강해진 탓이다. A씨는 “회사로서는 업무상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보직이지만 모두들 색안경을 쓰고 보니 회사 밖에서 대관 일을 한다고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현실이 참담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말부터 대관 업무가 위축된 분위기 속에서도 올해 1월 대관 전담팀을 새로 꾸린 A사도 한숨만 쉬고 있다. 불과 3개월 만에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임원들이 직접 국회의원 보좌진을 만나는 게 서로 불편해서 전담팀을 만든 건데 요즘은 만남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팀이 와해 상태”라며 걱정했다.

삼성이 미래전략실 해체와 함께 말 많고 탈 많던 그룹 차원 대관 기능을 없애며 수십 년간 이어진 기업들의 대관 업무가 전환점을 맞았다. 정부와 민간의 꼭 필요한 의사소통 창구란 역할에도 폐쇄적이고 음습한 뉘앙스가 강한 대관은 기업들에게 ‘뜨거운 감자’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전실 대관 조직은 삼성 계열사는 물론 대기업 전체를 따져도 최정예로 꼽혔다. 미전실 기획팀 소속이었던 대관 담당은 10여명으로 알려졌고, 국회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활동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 대(對) 기업, 경찰, 검찰 등을 대상으로 개별 접촉을 통해 네트워크 구축에서부터 정보수집, 기획, 전략수립, ‘로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의 우호적인 사업 환경 조성을 위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그러나 미전실 해체로 이들이 원소속사로 복귀하면서 그룹 대관 기능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다고 삼성의 대관업무가 전면 중단된 것은 아니다. 현재 삼성의 상장 계열사 16개 중 삼성전자는 대외협력팀에 자체 대관 조직을 운영 중이고 삼성물산 건설부문, 삼성SDI, 삼성생명 등도 법령 관련 건의 등을 담당하는 부서나 인력을 운영한다. 이런 기업들은 그룹 차원 대관 폐지로 대관 부담이 그만큼 가중됐다. 삼성의 한 계열사 관계자는 “국회 입법과 관련한 대관업무는 기업의 성장은 물론 향후 기업 지배구조 개편 방향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업무”라며 “미전실 해체로 모든 대관업무가 올 스톱되면서 경영 활동 자체가 크게 위축되는 것은 물론 ‘눈 가리고 자동차를 몰듯’ 향후 기업 경영 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각 계열사 경영진들도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 동안 삼성 계열사들이 잦은 정부 간섭에도 끄떡 없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미전실이 대관을 총괄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방패막이 성격도 있었던 셈이다. 삼성의 다른 관계자는 “미전실과 그룹 대관 폐지로 그동안 사업에만 집중하면 됐던 계열사 경영진들은 앞으로 신경 쓰고 책임질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이 그룹 대관 조직을 해체하자 재계의 눈은 SK로 쏠렸다. SK도 그룹 차원 대관 업무를 최고 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총괄한다. SK 그룹 대관 업무는 10여명이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SK 관계자는 “삼성 미전실 해체 발표 이전에 이미 조직을 줄여 당분간 최소 인력이 각 관계사에서 분야별 대관을 맡고 있다”며 “최근 대관업무가 올스톱되면서 수펙스추구협의회가 기업활동에 꼭 필요한 정부 정책이나 입법 동향과 관련된 그룹 입장을 설명하는 등의 업무를 맡는 방식으로 조정해 갈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규제산업인 통신과 건설사 등은 대관 위축 분위기에 초조해하는 분위기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 쪽은 요금을 비롯해 모든 게 인가제라 정부와 협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며 “요즘같이 대관업무가 막힌 상황에선 기업들은 발만 동동구르고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간 대관 조직을 운영한 다른 기업들도 겉으로는 “미전실과 성격 자체가 달라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괜한 오해를 살지 몰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은 대면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 필수불가결한 업무 위주로 진행하는 분위기다. 8명이 그룹 대관을 맡고 있는 포스코의 경우 “대관팀은 그간의 정부 업무를 중단하고 사회공헌과 공익적 역할 등 꼭 필요한 일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보가 공유되고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시대에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둔 기존 대관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부 교수는 “부당한 접촉을 통해 부당이익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 간 의사소통 채널을 공식화하고, 논의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며 “기업이 스스로 투명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국회나 정부에 정당하게 로비할 수 있는 절차와 방식, 범위를 규정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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