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3.9
케이시 애플렉(Casey Afflec)이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시’에서 보인 연기는, 그래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도 탔겠지만, 흠잡을 데 없을 만큼 좋았다. 그의 배역은 감정적으로 적당히 흐트러져도 괜찮을 만큼 비극적이었으나 그는 한번쯤 풀어지리라 예감하던 기대를 외면하며 끝내 그 감정을 여밈으로써 극의 무게를 온전히 담아냈다. 2010년 영화 스텝 등에게 가한 성희롱 등으로 고소를 당했다가 합의로 재판을 모면한 이력 때문에 그를 탐탁하지 않게 여기던 내 지인은 그의 연기가 너무 좋아서 더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그 속상함은 재능과 인품, 실력과 인간성은 다르다는 사실, 말이나 글뿐 아니라 표정 등 몸의 언어도 잘 훈련되고 정제된다면 그 다름을 거의 완벽하게 감출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데 따른 속상함일 것이다.
시인 조병화의 전두환 찬양시를 언급했지만, 87년 1월 72세의 미당 서정주도 ‘전두환 탄신 송시’를 썼다. 그래도 미당이라 제목부터 ‘처음으로’라 그럴싸하게 단 그 시는 특유의 시적 리듬감과 조어감각이 스며 있어, 더 읽기 힘이 든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미당의 아름다운 시들을 읽다 보면 겪는, 상한 속을 도려내야 하는 불편함도 애플렉의 연기에서 느꼈다는 지인의 속상함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수 윤복희는 여러모로 빼어난 연예인이다. 그는 6세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뮤지컬로 데뷔한 이래 그가 보여준 연기와 노래는 가히 독보적으로 빛났다. 미국서 활동하던 그가 67년 1월 귀국하면서 미니스커트를 처음 입어 국내에 미니스커트를 ‘충격적으로’ 소개했다는 건 96년 한 광고대행사가 편집한 CF 영상 때문에 와전된 것이었다지만, 어쨌건 그는 관습에 맞서는 당당함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CF 카피가 “이 땅에 미니스커트 1호가 나타났을 때, 그녀가 입었던 것은 옷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였습니다”였다고 한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11월 그는 SNS에 “빨갱이들이 날뛰는 사탄의 세력” 운운하는 트위터를 올렸고, 그의 ‘여러분’이 주던 위로도 나로선 덥석 못 받게 됐다. 가수 윤복희가 1946년 3월 9일 태어났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