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김영란법)과 ‘최순실 게이트’, 삼성 대관 업무 폐지 등의 영향으로 중앙 부처 공무원과 기업 대관 담당자의 만남이 뚝 끊겼다. 공직사회에선 민간과의 소통 마비로 현실과 동 떨어진 정책이 나올 것이란 우려와 민ㆍ관 관계를 투명하게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경제부처 고위공무원단 소속 간부 A씨는 8일 “비선 세력이 기업 대관과 관료 조직을 통해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사태 이후 민ㆍ관 접촉 자체가 몽땅 ‘검은 거래’로 인식되는 분위기”라며 “불필요한 특혜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외부 인사들과 식사하는 자리를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 부처의 B국장도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 최근엔 기업 대관 담당자를 따로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C과장도 “정부 출신 선배 대기업 대관 담당자가 후배 공무원을 찾는 것은 어떤 목적 의식이 있기 때문”이라며 “아무리 친목이나 소통 명분이라 하더라도 추후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다른 이유를 대서라도 사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간의 의견을 듣는다는 이유로 빈번하게 이뤄졌던 당국과 기업의 비공식 회식도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김영란법 시행 후 나타난 흐름이 최순실 사태와 삼성의 대관 업무 폐지로 더욱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처럼 민간과 관료 사회의 소통이 점점 줄어들며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처럼 로비스트가 합법화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공무원과 기업 대관 담당자의 소통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적잖다. 경제부처의 1급 간부 D씨는 “공무원이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고 고립되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공무원보다 민간 부문이 거의 모든 면에서 앞서 있는 상황에서 민ㆍ관 접촉 실종은 공무원 사회의 지체만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책은 새로 만드는 것보다 잘못 만들어진 정책을 되돌리는 것이 더 어렵다”며 “민간과 소통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 때문에 소통 자체를 막았다가 훨씬 큰 비용을 치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부처 E과장도 “정책의 특성상 익명성이나 비밀성이 보장돼야 하는 부분도 존재한다”며 민간 접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행정행위가 법령이나 공권력 등 강제성을 띤 형태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란 점도 감안돼야 한다. 한 경제부처의 간부 F씨는 “사법ㆍ행정처분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을 기업 대관 부문 등을 통해 해결하곤 했는데 대관 조직이 없어지면 앞으로 이런 문제를 어떻게 매끄럽게 풀 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새로운 소통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대도 적잖다. 기업 대관 담당자를 만나지 않게 돼 홀가분하다는 이들도 많다. 금융감독원 G국장은 “김영란법 이후 민간과의 비공식 만남이 거의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소통이 어려워진 건 아니다”며 “비싼 저녁을 대접받았다고 해서 소통이 잘되는 게 아닌 것처럼 지금은 서로 부담 없이 업무 얘기만 하니 오히려 더 낫다”고 말했다. 이미 당국의 소통 방식도 바뀌고 있다. 과거만 해도 금융회사가 당국에 직접 애로사항을 건의해야 하는 구조였다. 지금은 당국이 현장점검반을 꾸리고 직접 금융사를 찾아 의견을 접수한다. 금융위원회 H국장도 “기업의 대관업무라는 건 말 그대로 기업이 자사의 우호적인 사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한 업무지 정부가 민간과 소통하기 위한 창구는 아니다”며 “이번 삼성 사태를 계기로 민·관 사이의 소통 고리가 끊겨선 안 되겠지만 기업 역시 대관 중심의 소통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경제부처 간부는 “삼성의 대관 업무 폐지는 오히려 민ㆍ관 소통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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