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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을 잃어버린 한국야구의 ‘예견된 꼴찌’싸움

입력
2017.03.0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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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 대표팀이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된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공식훈련에서 무거운 분위기 속에 몸을 풀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야구 대표팀이 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된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공식훈련에서 무거운 분위기 속에 몸을 풀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야구 대표팀은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정식에서 과거 대회의 굴욕적인 장면을 담은 영상을 봤다. 2009년 2회 대회 우승 장면도 있었지만 2006년 초대 대회 때 2차 리그에서 한국에 패한 뒤 서재응(전 KIA)이 도쿄 돔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장면과 2013년 3회 대회 푸에르토리코와 준결승에서 이중도루 실패로 추격 기회를 날리는 장면도 있었다.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과거의 아픈 영상을 공유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세계 정상 탈환을 위한 동기부여 목적이 있었다. 고쿠보 히로키 일본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과거 분했던 것들을 풀겠다는 굳은 다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의 이런 자극제는 어쩌면 한국 대표팀에 더 필요했을지 모른다. 2013년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던 한국은 안방 고척스카이돔에서 4년 전보다 더한 치욕을 맛 봤다. 대표팀은 지난 6일 개막전에서 1승 제물로 삼았던 이스라엘에 1-2로 덜미를 잡힌 데 이어 7일 네덜란드에도 0-5 영봉패를 당했다. 2연패로 2회 연속 1라운드 탈락 위기에 몰린 것과 2경기 19이닝 동안 고작 1점을 뽑는 무기력한 경기 내용도 문제였지만 대표팀의 태도 논란이 팬들을 더욱 들끓게 했다.

중심 타자 김태균(35ㆍ한화)은 네덜란드전에 앞서 애국가가 나올 때 유니폼 모자를 벗지 않고 거수경례를 했다. 경찰 야구단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투수 이대은(28)이 거수경례를 하자 ‘민간인’ 김태균도 무심코 따라 했던 것이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2경기 동안 7타수 무안타로 침묵하자 논란은 더욱 커졌다. 또 한 선수는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혼자 웃고 있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혀 비난 강도는 높아졌다.

사실 선수들의 안일한 태도는 일찌감치 감지됐다. 전지훈련 장소 일본 오키나와에서 임창용(41ㆍKIA)은 무면허 사고를 내고 벌금 30만엔(약 300만원)을 현지 경찰에 납부하는 일도 있었다. 이미 몸값 ‘50억원’이 기본인 선수들은 어느새 간절함이 사라졌고, 지고 있을 때 ‘끝까지 해보자’는 투지도 실종됐다는 혹평도 쏟아졌다.

오히려 마이너리거와 ‘무직’ 선수들로 구성된 이스라엘이 한국보다 똘똘 뭉쳤고, 메이저리거가 즐비한 네덜란드는 큰 점수차에도 경기에 더 몰입했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8일 진행된 훈련에서 전날 경기를 돌아보며 “5회 박석민(NC)이 2루타를 쳤을 때 (공을 잡은) 우익수가 송구를 안 하거나 중간에서 자를 줄 알았는데 그렇게 이기고 있어도 승부하려고 던졌다는 자체가 놀랍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부정적인 분위기를 인지한 채 이날 낮 12시부터 2시간 동안 조용히 공식 훈련을 진행했다. 김태균은 심한 감기 몸살로 훈련에 불참했다. 김 감독은 “간밤에 김태균이 트레이너와 함께 응급실에 다녀왔다”며 “야구가 안 되면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피로하다”고 설명했다. 대표팀의 한 선수는 “성적이 안 나올 때마다 이런 논란이 생기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밝혔다.

빅리거들의 대거 불참과 각종 부상 등으로 선수 선발부터 삐걱댔던 대표팀은 최악의 분위기 속에 9일 대만과 최종전을 치른다. 사실상 ‘꼴찌 싸움’으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면서 예선 라운드 강등을 피해야 한다. 본선에 오른 16개 팀 중 상위 12개 팀은 차기 대회 본선 진출권을 얻지만 4개 조 최하위 팀은 예선 라운드부터 거쳐야 한다. 한국은 2006년 4강, 2009년 준우승의 성적을 냈고 2013년에는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2승(1패)을 거둬 조 최하위는 피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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