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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프로배구 전성시대 이끈 박기원-박미희 '양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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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프로배구 전성시대 이끈 박기원-박미희 '양朴' 이야기

입력
2017.03.0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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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원(왼쪽)-박미희 감독/사진=한국배구연맹

[인천=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2017년 3월 7일은 인천 체육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다. 프로배구가 출범하고 처음으로 인천을 연고로 둔 남녀 프로배구 팀이 같은 날 동반 우승을 확정했다.

무관의 제왕으로 통하던 대한항공은 6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고 한때 전통의 명가였던 흥국생명은 오랜 침체기를 딛고 9년만의 우승에 감격했다. 긴 세월이 말해주듯 우승 헹가래를 치기까지 뒤에서 묵묵히 선수단을 조련한 박기원(66ㆍ대한항공)ㆍ박미희(54ㆍ흥국생명) 두 감독의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

◇ 술ㆍ담배도 끊은 노감독의 열정

박기원 감독은 무뚝뚝한 부산 사나이다. 표정이 무서워 보인다고 하면 그렇게 보이는 것뿐 실제로는 아니라며 껄껄 웃는다. 이 때문인지 먼저 농담도 던지고 분위기를 편하게 이끌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박 감독은 7일 난적 삼성화재를 누르고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 별 일 아니라는 듯 차분하게 수고한 코칭스태프와 악수를 나눈 뒤 코트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속내는 달랐다. 경기 후 자신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아내 얘기를 하면서는 울컥하기도 해 기자회견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는 "아내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현장에 있는 나보다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라며 "(아내가) 이해해주지 못했으면 내가 좋아하는 배구를 지금까지 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선신이 뒤따르는) 그게 인생"이라고 했다.

이날은 노감독의 배구 인생 마지막 퍼즐이 풀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40여 년을 기다린 우승이다. 한국에서 우승이 없었는데 먼 길을, 세계를 다 돌고 돌아왔다. 대한항공으로 올 때 내 인생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센터였던 박 감독은 1980년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했다. 이후 1983년부터 2003년까지 이탈리아에서 감독 또는 코치로 활약했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이란 대표팀 사령탑을 역임했다.

대한항공은 항상 우승 후보였지만 시즌 막판 체력과 조직력의 문제를 드러내며 무너지곤 했다. 그걸 고친 것이 박 감독의 리더십이다. 그는 우승 원동력으로 두꺼운 선수층-자율 훈련-단합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그러면서 "우승 유전자(DNA)가 2% 부족했을 뿐 나는 머리만 빌려줬다"고 겸손했다. 선수들이 간절히 원했던 자율 훈련 시스템과 적극적인 소통으로 신뢰를 얻었고 폭 넓은 선수들을 최대한 활용한 로테이션을 통해 체력 안배에 성공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기록적으로는 올 시즌 블로킹(세트당 2.635개 1위)과 서브(세트당 1.204개 2위)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것이 컸다.

세대교체가 거센 배구계의 젊은 감독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한 박 감독은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열정의 문제다. 물론 체력은 조금 달린다. 10시까지 일하기 위해 술ㆍ담배도 다 끊었다. 아마 내가 다른 감독들보다 하루에 2~3시간은 더 일했을 것"이라고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어 박 감독은 "대신 감독도 변해야 한다. 연구하고 공부하고 변화하라"며 롱런의 비결을 밝혔다.

◇ 여자 감독 편견 깨 '코트의 여우'

박기원 감독처럼 박미희 감독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센터다. 1980년대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박미희 감독은 센터인데도 토스가 좋아 세터 역할을 했다. 심지어 서브 리시브도 좋았다. 머리 좋고 다재다능한 코트의 여우로 통했다. 국가대표로 각종 국제대회에서 숱한 성적을 남기고 1990년 은퇴한 뒤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 2014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는다.

박미희 감독은 허덕이던 전통의 명가를 9년 만에 부활시킨 것은 물론 여자 감독은 안 된다는 편견을 깬 인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됐다. 그는 야구ㆍ축구ㆍ농구ㆍ배구 등 국내 4대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우승을 이룬 첫 여성 사령탑으로 우뚝 섰다. 박미희 감독 이전에 국내 프로팀 지휘봉을 잡은 여성은 조혜정(64) 프로배구 여자부 GS칼텍스 전 감독(2010∼2011)과 이옥자(65) 여자 프로농구 KDB생명 전 감독(2012∼2013) 뿐이었다. 그마저 최하위에 그치면서 두 감독 모두 한 시즌 만에 자리를 내놓았다.

박미희 감독은 "주위에서 언니나 이모 리더십 같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순수한 지도자가 되는 게 목표"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우승을 확정짓고 난 뒤에는 "그동안 '박미희가 잘해야 여성 감독이 또 나온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담이었다. 이번 우승으로 그걸 덜게 됐다. 선수들에게 정신적인 면을 강조했다. 끊임없이 소통하며 결속력을 다진 것이 중요했다"며 젖은 눈가를 닦았다.

인천=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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