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아시아 라운드를 포함해 6전 전승으로 4강에 오른 한국을 두고 외신은 “도대체 저들은 누구인가”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야구 변방으로 취급 받던 한국은 예선에서부터 일본을 꺾고 WBC 흥행의 기폭제 노릇을 톡톡히 해낸 데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야구 종주국 미국을 격파하는 등 파란을 일으키며 4강 신화를 일궜다. 2009년에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은 WBC가 배출한 최고의 팀으로 우뚝 섰다.
2013년에는 네덜란드가 4강에 오르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17 제4회 대회에서도 한국을 5-0으로 침몰시킨 네덜란드는 당시만 해도 무명의 마이너리거들이 주를 이룬 팀이었다. 그들은 WBC를 계기로 급성장해 4년이 흘러 팀 내에서도 주축 메이저리거들로 돌아와 네덜란드를 강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WBC 언더독(스포츠에서 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 반란의 주인공은 2017년 이스라엘로 이어졌다. 뚜껑을 열기 전 A조에서 다크호스 정도로 여겨졌던 이스라엘은 첫 경기에서 한국을 이변의 희생양으로 내몰더니 대만과 2차전에서도 장단 20안타로 15점을 뽑아 한국전 승리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이번 대회 참가 16개국 중 세계 랭킹이 41위로 가장 낮은 이스라엘에 대해 미국의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자메이카의 봅슬레이 팀으로 평가 받은 이스라엘이 한국을 꺾었다”고 비유했다.
또 그들의 승리에는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한 팀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한국전 1회말 수비 서건창 타석 때 유격수를 2루 베이스 위로, 2루수를 1ㆍ2루 사이에 배치하는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구사해 시선을 모았다. 이병규 JTBC 야구 해설위원은 “서건창이 저 정도로 잡아당기는 타자는 아니지만 중요한 건 그만큼 이스라엘이 그들 나름대로의 철저한 분석과 연구를 해 왔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민족의 자긍심으로 똘똘 뭉쳤던 한국처럼 이스라엘의 끈끈한 유대감도 원동력으로 회자되고 있다. 대만전에서 대회 1호 홈런을 친 이스라엘의 포스 라이언 라반웨이(오클랜드)는 “우리는 인종 때문에 많은 공격을 받았었다. 이렇게 일어서서 유대인 깃발을 흔들며 경기할 수 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자격이 있다”고 자부했다. 이스라엘은 자국 내 야구 등록 선수가 800명에 불과하다. 대표팀 엔트리 28명 중 슬로모 리페츠만 유일하게 이스라엘에서 태어났다. 나머지 27명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 중 최소한 한 명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 유니폼을 입었다. 간판타자 아이크 데이비스(뉴욕 양키스)는 “몇 달 전에 이스라엘을 방문했는데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며 "자라면서 들어온 이야기와 지명을 실제로 본 것은 삶을 바꾸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이 모두 유대인이고, 가족의 절반이 유대인이다. 조상과 아버지를 대표한다는 것을 굉장히 좋은 경험이다. 특히 가족이 유대인으로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고 자부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대표팀의 마스코트 '멘치'(mensch)를 데리고 다니며 유대인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멘치는 유대인을 형상화한 대형 인형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 대표팀에는 항상 웃음이 넘쳐난다"며 "유대인들의 전통 복장을 한 마스코트 멘치는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데 더없이 큰 역할을 한다"고 소개했다.
“우린 경쟁력이 있는 팀”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낸 제리 웨인스타인 감독의 말처럼 이스라엘의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