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바늘’ ‘잘 가라 서커스’ 등을 쓴 소설가이자 최근 서울 연남동에 스페인 식당 ‘돈키호테의 식탁’을 연 천운영씨가 음식과 사람 이야기로 격주 독자 여러분을 만납니다.
알리올리(alioli)라는 소스가 있다. 아호리오(ajolio), 아호아세이테(ajoaceite)라고도 부르는데, 내가 이름을 지었다면 수행자의 소스라고 명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끈한 돌절구에다 마늘과 올리브유를 넣고 짓찧어 만드는데, 짓누르고 돌리는 힘만으로 끈적한 크림 상태로 만들려면 여간한 인내가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충분하고도 꾸준한 시간을 들여야만 만들 수 있는 소스. 그래서 알리올리 소스를 곁들인 어쩌구하는 메뉴를 보면, 맛도 보기 전에 손목부터 시큰거린다.
그런데 이 소스, 참으로 신비한 맛이다. 마늘 맛 제대로 풍기는 존재감 강한 소스인데도, 어떤 음식이든 이상하게 잘 스며든다. 기름진 음식에 곁들이면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고소함은 배가시키고, 밍밍한 음식은 풍미를 더해주지만 담백함은 건드리지 않는다. 단지 마늘과 기름일 뿐인데. 찡하게 단순하고, 감미롭게 알싸하다. 자기 주장을 하되 결코 상대를 짓누르지 않는, 순정하면서도 도발적인 소스라고나 할까.
여기에 염장대구 한토막을 추가하면 어떤 맛이 날까. 염장대구는 보통 사나흘 정도 물을 계속 갈아주며 불린 다음 사용한다. 그러면 짠맛이 사라지고 쫀득한 식감을 가진 일품 재료가 된다. 이걸로 할 수 있는 요리는 정말 많다. 회처럼 그대로 썰어 먹거나, 뜨거운 올리브유에 오랜 시간 익히거나, 우유와 버터를 넣고 끓이기도 한다. 이중에 알리올리 소스처럼 짓찧어 만든 염장대구요리가 아호아리에로(ajoarriero). 마부의 마늘이라는 뜻이다.
오래 전 바다의 생선을 내륙으로 운반하기 위해서는 염장 건조법이 유용했다. 썩을 염려도 없고 무게도 줄고 화폐 대신으로 통용되기도 하는 데다가 필요할 때 꺼내 먹을 수도 있으니, 운반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상품이었을 것이다. 아호아리에로를 만들겠다고 불을 피우거나 취사도구를 꺼낼 필요도 없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지느러미 부위나 부스러기들을 골라 사용하니 부담도 적다. 요리법도 간단해서 마늘 몇 톨과 함께 오목한 바위에 놓고 짓찧으면 된다. 들판에서 로즈마리 몇 잎 따다 추가하면 향도 좋고 항균작용도 한다. 마요네즈처럼 걸쭉해질 때까지 찧고 또 찧고. 따로 간을 할 필요도 없이 찧는 것만으로 완성.
스페인 라만차 지역에 가면 이 이름의 요리를 흔히 만날 수 있다. 대구살을 섞은 감자퓌레 모습인데 돈키호테가 기사서품을 받기 전 객줏집에서 먹은 음식이라는 설명이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돈키호테가 먹은 바로 그 음식일 것 같지는 않다. 돈키호테가 먹은 것이 염장대구인 것은 맞지만, 잘 불리지도 않고 양념도 제대로 되지 않은 국물 있는 요리였다고 나와 있으니 말이다. 굳이 따져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이름이 왜 마부의 ‘대구’가 아니라 마부의 ‘마늘’인지는 좀 궁금해진다. 주재료는 마늘이 아니라 대구였을 텐데 말이다.
알리올리 소스를 만들다가 문득, 알리올리나 아호아리에로나 혼자 만들어 먹는 요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는 수행이지만 여럿이 함께 하면 놀이가 될 테니까. 강가에 당나귀와 말들을 풀어놓고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오래 전 마부들을 상상해 본다. 움푹한 바위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누군가 절구질을 하는 동안 누군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마친 누군가가 돌절구를 이어받아 찧기 시작하고. 그러면 또 누군가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고. 서두를 것도 없이, 안달할 것도 없이. 대구 뼈가 씹히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워지면, 누군가 꺼낸 딱딱한 빵 조각을 쪼개 찍어 먹기 시작하고. 그런 식탁이 그리운 밤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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