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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버킷리스트는 ‘보디프로필’

입력
2017.03.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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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신체

화보 촬영하며 성취감 느껴

촬영후기ㆍ식단ㆍ운동 비법 등

‘#보디프로필’ SNS 글 넘쳐

섹시함을 강조하는 '섹시화보'와 달리 건강함을 부각시키는 '보디프로필'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섹시함을 강조하는 '섹시화보'와 달리 건강함을 부각시키는 '보디프로필'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다이어트는 평생 숙제’라는 좌우명으로 스무 살 이후 키 164㎝에, 50㎏가 채 안 되는 늘씬한 몸매를 유지해온 직장인 김모(28ㆍ여)씨는 올해 초부터 근력 운동에 한창이다. 다음달 초 ‘보디프로필(Body Profileㆍ신체 화보)’ 촬영을 앞두고 몸매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새해를 맞아 버킷리스트(Bucket listㆍ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를 만들던 중 문득 ‘서른이 되기 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려 월급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인 30만원을 보디프로필 촬영에 쓰기로 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촬영까지 한 달 남짓, 지인들과의 술자리로 가득 찼던 그의 저녁시간은 이제 헬스트레이너의 차지가 됐다. 김씨는 “포토그래퍼(사진사) 조언에 따라 체지방률을 18%로 만드는 게 목표”라며 들뜬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복근을 드러낸 채 카메라 앞에 선 직장인 신모(29)씨는 “애써 관리한 몸을 증거로 남길 수 있어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신모씨 제공
지난해 10월 복근을 드러낸 채 카메라 앞에 선 직장인 신모(29)씨는 “애써 관리한 몸을 증거로 남길 수 있어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신모씨 제공

“보디(Body) 좀 뽐내볼까”

‘상위 1% 명품 몸매’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야 하는 보디빌더나 트레이너 등 헬스업계 종사자의 전유물이었던 보디프로필에 도전장을 내미는 일반인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보디프로필은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신체를 부각하는 방식의 화보촬영으로, 과한 노출로 섹시미를 드러내는 소위 ‘섹시 화보’와는 차이가 있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도전, 도전 후의 성취감을 몇 장의 사진으로 느껴보고자 하는, 신(新)풍속도인 셈이다.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는 ‘#보디프로필’이라는 해시태그(특정 핵심어를 편리하게 검색)로 10만 개 이상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다이어트나 운동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보디프로필 촬영 후기부터 식단관리, 운동비법, 촬영 전 유의사항 등을 담은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보디프로필 전문업체 엠클래스스튜디오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보디프로필 촬영을 하러 오시는 분들 중 일반인은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80%에 달한다”고 귀띔했다.

반 년 넘게 운동해 몸을 만든 뒤 지난해 10월 보디프로필 촬영을 했다는 직장인 신모(29)씨는 “5㎏ 정도 감량했는데 몸이 생각만큼 완벽하지는 않아서 재킷을 반쯤 걸친 채 촬영에 임했다”고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그래도 ‘관리한 몸’을 증거로 남길 수 있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관리를 좀더 해 다시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촬영은 운동의 활력소다. 체중감량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근육으로 다져진 매끈한 몸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해야 하는 운동 과정은 고달프기 이를 데 없는 강행군(?). 촬영된 자신의 몸을 상상해보는 것 자체가 그 고달픔을 이겨내는 힘이 되는 것이다. 직업군인 황모(24)씨는 취미 삼아 시작한 운동으로 두 달 만에 8㎏를 감량했다. 한 동안 볼 수 없었던 복근이 드러나자 격한 기쁨에 그는 다음달 휴가에 맞춰 보디프로필 촬영을 예약했다. “막상 예약을 해놓고 나니 귀찮아도 운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그는 현재 훈련 외 시간은 몽땅 운동에 투자하고 있다.

당당하게 벗는다, 날 위해

보디프로필이 일반화하면서 ‘벗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던 고객들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개인화보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김성재 포토그래퍼는 “2, 3년 전만 해도 문의만 하고 촬영장소에는 나타나지 않는 고객들이 많았다. 촬영에 들어가도 쑥스러워하면서 몸을 움츠리거나 가리는 분들이 태반이었다”며 “이제는 포즈나 콘셉트를 연구해오거나 현장에서도 ‘이 포즈 어떠냐’고 적극적으로 물어온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물론 화보촬영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이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 자체가 (그것도 벗은 몸으로!)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다. 벌써 세 번이나 보디프로필을 촬영한 김모(32)씨는 “(세 번이나 촬영했지만)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라고 했다. 특히 첫 촬영의 결과물을 그는 ‘최악’이라고 표현했다. “나름대로 크고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다고 생각하면서 사진을 받았는데, 머릿속에서 그린 것과 너무 달라 괴리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꾸준한 관리로 변해가는 몸을 남기는 데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화보촬영의 전문가는 연예인 아닌가, 전문가들의 포즈를 연구하고 (집에서) 따라 해보는 게 현장에서 어색함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기념 삼아, 재미 삼아 촬영에 임하는 사람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튕겨져 나올 것 같은,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몸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반드시 ‘완벽한 몸’이 보디프로필 촬영의 전제가 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최근 여자친구와 함께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대학생 최모(26)씨는 “운동 얘기만 하면 치를 떨던 여자친구를 어렵게 설득해 헬스장을 다니게 했다. 커플 보디프로필 촬영을 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 기념일 이벤트로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찍는 게 다는 아니다. 본인 만족을 넘어, SNS에 사진을 올려 뽐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신씨는 보디프로필 촬영 당시 자신의 몸을 “완벽하지는 않았다”고 평하면서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다. 복근을 드러낸 채 포즈를 취한 모습에 ‘부담스럽다’는 장난 섞인 항의도 받았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게 신씨의 말이다. 촬영도, 공개도 결국 ‘내가 좋아서’다. 신씨는 “‘멋있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많아 뿌듯했다”면서 “사람들이 ‘나도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메시지를 보내오니 ‘더 열심히 운동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보디프로필. 거창한 이름 앞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 다른 누군가의 눈요기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면, 그걸로 자격은 충분하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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