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이라도 인정하면 이렇게 수치스럽진 않을 것”
지켜보던 최씨 “우리가 죄가 있어서 오게 된 거니…”

“책임을 피할 생각은 없지만 꼭 이 말씀은 드리고 싶어요. (최순실씨가) 한번만이라도 당당하게 (본인이 주도했다고) 인정한다면 (제가 이렇게까지) 수치스럽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한때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의 최측근으로 그의 지시를 받아 미르재단과 정부 주요 인사에 개입한 광고감독 차은택(48ㆍ구속기소)씨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부인으로 일관하는 최씨 행태에 서럽게 흐느꼈다. 구속기소된 뒤 이날 처음으로 법정에서 최씨를 마주한 그는 “(문화융성에 힘을 써보자는) 최씨 말만 믿고, 언젠간 보상되겠지 생각하며 일을 했는데, (이제 와서) 본인이 계획하고 지시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국정농단 관련 17차 공판 증인으로 나온 차씨 진술은 일관됐다. 미르재단 설립부터 재단의 인사, 포스코계열 광고회사의 지분 강탈 시도까지 모두 최씨 지시와 결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최씨는 재단에서 아무 직함도 없고 자신이 장악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맞느냐”고 묻자 차씨는 “미르재단에서 진행된 모든 프로젝트는 재단 이사회가 아니라 최씨가 제안해서 시작됐다”며 “모든 프로젝트는 대통령이 하는 일과 연관된 일”이라고 못 박았다. 최씨가 ‘자신은 관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 광고업체 플레이그라운드(PG)에 대해서도 차씨는 “최씨가 재단에서는 실제 영리사업을 못하니까 영리사업을 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기 위해 설립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PG는 재단과 총괄 파트너 계약을 맺고 이후 7건의 별도 사업 용역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확인됐다.
최씨가 미르재단 이사장으로 문화계 원로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염두에 뒀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차씨는 “최씨가 나한테 이사장 인사와 관련해 이 전 장관에 대해서도 물어봤다”며 “내가 최씨에게 ‘훌륭한 분이지만, 저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지켜보던 최씨도 입을 열었다. 최씨는 “우리가 죄가 있어서 (법정에) 오게 된 거니까 (죄를 인정하고) 판사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면서도 “PG는 미르재단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유명 광고회사로 만들어 차씨를 도와주려 했던 걸 아느냐”고 반박했다. 이에 차씨가 “(당시는 그랬는데) 저도 몰랐던 부분을 재판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많이 알게 돼 수치스러울 정도로 창피했다”고 답하자, 최씨는 “그건 언론이 하는 얘기”라며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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