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여성에 10억 투자사기 당해
대부분 가족 몰래 돈 줬다가 날려
가정붕괴로 이어질까 좌불안석
전남 구례지역에 거주하는 베트남 국적의 결혼이주여성들이 같은 국적의 여성에게 10억원 대의 사기를 당했다고 집단 고소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피해자들은 이번 사건이 자칫 가정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7일 구례경찰서와 주민들에 따르면 베트남 출신의 A(41)씨는 2015년 3월쯤부터 올해 1월까지 구례지역에 거주하는 자국민 이주여성들에게 “한 달에 8~25%의 높은 이자를 주겠다”고 속여 거액의 돈을 가로채 잠적했다. A씨는 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1월 24일 베트남 호치민시 인근으로 도주한 뒤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피해자 19명은 지난 달 9일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현재 경찰이 사건을 넘겨 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이 지금까지 확인한 피해액만 10억9,500만원에 이르며 추가 피해자와 피해액이 더 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12년 전 남편을 만나 구례에 살고 있는 B(30)씨는 A씨에게 2년간 6,000만원의 피해를 당했다. 평소 친자매처럼 지낸 언니의 부탁이라 의심 없이 빌려줬다. B씨는 식당에서 허드레 일을 하며 모은 돈과 심지어 대출까지 받아 부탁할 때마다 빌려줬다.
B씨는“밤낮 없이 주말도 쉬지 않고 피 같이 모은 돈을 남편도 모르게 빌려줬다”며 “연고도 없는 타지로 시집 와서 같은 베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언니를 철썩 같이 믿었는데 돈을 날리게 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C(33)씨는 남동생이 광주에서 공장을 다니면서 모은 9,000만원을 가져다 A씨에게 빌려줬다. C씨는 “A씨가 이자를 주고 며칠도 안 돼 또다시 돈을 빌려 달라고 재촉해 피해 액수가 커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들도 대부분 공장과 식당, 농사일을 도우면서 모은 돈을 가족 몰래 빌려주다 피해를 입었다. 이들은 A씨가 같은 국적 출신이라며 평소 살갑게 대하면서 의심을 하지 않아 피해가 컸다.
피해자들은 이번 사건으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하고 가정불화로 이어질지 불안해하고 있다. 이윤우 구례군다문화가정협의회 사무국장은 “이번 사건으로 시골마을이 발칵 뒤집혔다”며 “피해를 입은 다문화가족 여성들이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수사기관에서 서둘러 사건을 해결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해외로 잠적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도주한데다 피해자들과 의사 소통에 어려움으로 수사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며 “A씨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베트남 경찰과 수사 공조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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