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선수는 늘 부상에 노출돼 있다. 근육이나 인대 부상은 평소 근력 강화 운동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지만 상대와 충돌로 다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 미드필더이자 주장인 황지수(36)는 4일 울산 현대와 K리그 클래식(1부) 원정에서 상대 정재용(27)의 발에 얼굴을 채였다. 그라운드에 엎드려 고통을 호소하던 그는 피를 철철 흘리며 교체됐다. 포항은 1-2로 졌다. 황지수는 약 3개월 결장이 예상된다.
그의 코뼈 부상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09년 8월 전북 현대 루이스(36)와 부딪혀 코뼈가 골절됐고, 작년 4월 전남 드래곤즈 스테보(35)와 볼을 다투다가 또 부러졌다. 당시 한 달 만에 보호 마스크를 쓰고 복귀했다가 다시 출혈이 생겨 또 교체되기도 했다. 몸을 안 사리고 ‘전투적으로’ 플레이 하는 그를 팬들은 ‘들소’ ‘황투소’(이탈리아의 저돌적인 미드필더 젠나로 가투소에 빗댄 별명)라 부른다.
2004년 포항에 입단해 중간에 군 복무를 한 기간을 빼고 줄곧 한 팀에서만 뛴 황지수는 작년 11월 프로 통산 300경기 출전의 금자탑을 세웠다. 프로축구 34년 역사에서 47명만 달성한 대기록이다. 특히 그처럼 ‘원 클럽 맨’ 중 300경기 이상 뛴 이는 11명뿐이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팔팔한 체력을 과시하는 그는 자기관리의 표본이기도 하다.
황지수가 얼마나 독종인지 보여주는 예는 또 있다.
그는 2009년 10월 공익근무요원 소집통지서를 받았다. K3리그는 공익근무요원이 출전할 수 있어 황지수는 2년 뒤 다시 프로에 복귀하겠다는 목표로 챌린저스리그(3부리그, 지금의 K3) 문을 두드렸다. 낮에는 동두천 동사무소에서 독거노인들에게 쌀을 배달하고 밤에는 양주시민축구단에서 볼을 찼다. 휴가를 거의 쓰지 않고 악착같이 모아 소집해제를 한 달이나 앞둔 2011년 10월, 포항 팀 훈련에 합류했다.
축구는 감각 유지가 중요한 종목이다. 팀에서 오랜 기간 게임을 못 뛰고 벤치로만 밀려도 기량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2년 동안 잃은 감각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황지수는 동료들에게 티를 전혀 안 냈다. 그는 “군대 갔다 와서 몸 망가졌다는 말이 듣기 싫어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옛 기량을 회복했고 여전히 주전으로 뛰고 있다.
올 시즌 K3리그에는 한교원(27)과 고광민(29ㆍ이상 화성FC) 등 국가대표 출신들이 여럿 뛰고 있어 화제다. 이들이 상주 상무나 경찰축구단을 가지 않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며 주말에 리그에 출전하는 K3를 택한 건 황지수라는 ‘롤 모델’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항 관계자는 “황지수가 성공적으로 재기한 뒤 K3에 대한 문의가 많이 왔다. 황지수가 새 길을 열어준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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