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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수동’이지!", 출퇴근 ‘힐앤토’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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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수동’이지!", 출퇴근 ‘힐앤토’ 도전!

입력
2017.03.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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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솔직하게 밝혀야겠다. 그동안 팀장이 유난히 깐깐한 사람이라 어깃장을 놓은 것 같이 표현했지만, 사실은 누구라도 같은 반응이었을 거다.

“너 수동 운전은 하냐?”

“아니요”

“?!@$#@...”

“경주차 사면 주말 반납하고 매주 서킷 가서 살죠, 뭐!”

호기롭다 못해 치기 어린 내 말을 들은 팀장은 기가 막힌다는 듯 뒷목을 잡았다.

수동 변속기가 달린 차를 운전해 본 경험이라고는 12년 전 운전면허학원에서 받은 면허 시험 교육이 전부다. 면허증을 받은 이후 단 한 번도 수동 변속기를 조작해 도로를 달린 적이 없다. 이런 내가 갑자기 수동 변속기 차로만 참가하는 원메이크 스프린트 레이스에 출전하겠다니! 그렇다. 정말 ‘무모한’ 도전이다. 문득 누군가의 자동차 뒷유리에 붙어있던 문구가 떠오른다. “나도 내가 무서워요.”

수동변속기의 지존은 단연 페라리다. F430 게이트 변속기의 철컥이란!
수동변속기의 지존은 단연 페라리다. F430 게이트 변속기의 철컥이란!

아마추어 레이스 출전을 결심했을 때는 적어도 경기 시작 두세 달 전에 경주차를 마련해 연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물론 석 달도 충분한 시간은 아니지만, 왕복 3시간은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차에 익숙해지고 주말마다 서킷에서 단련하면 잘 타지는 못해도 경기에 참가할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막전을 불과 3주 남겨둔 지금도 경주차를 알아보는 중이다.

이러다 다른 참가자에게 피해만 주고 망신당하게 될까 봐 점점 불안해졌다. 경주차가 아니더라도 일단 수동 변속기 조작이라도 익혀야겠기에 당장 ‘연습용’ 차를 구하기로 정했다.

연습용 차 구매 예산은 딱 ‘일백만 원’. 레이스 헬멧, 슈트 등 장비를 사려고 모아둔 돈 일부를 쓰는 것이 아쉽다. 중요한 건 단 두 가지, 수동 변속기와 가격뿐이다. 차종, 연식 가릴 것 없이 수동 변속기가 달린 백만원짜리 중고차를 찾기 위해 모클(mocle.co.kr)을 샅샅이 뒤졌다.

모클(mocle.co.kr)에 올라온 투스카니
모클(mocle.co.kr)에 올라온 투스카니

예산을 살짝 넘었지만 110만원에 나온 현대 투스카니 2003년형 모델을 찾아냈다. 무려 고급형 GTS 트림이다. 보험 처리 이력이 상당했지만, 어쨌든 보기 좋게 잘 고쳐놓았으니 어느 정도 관리는 한 것 같았다. 더 알아보지도 않고 급하게 판매업자에게 연락해 실제 매물인지 확인했다.

엠파크 허브 실내
엠파크 허브 실내

바로 다음 날 아침, 구매할 투스카니가 있는 인천 ‘엠파크’ 단지로 향했다. 중고차 매매단지에 대한 선입견 덕분에 괜한 겁을 냈지만 막상 도착해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쇼핑몰 같이 밝고 깔끔한 분위기에 마음이 놓였다. 판매업자가 속한 매매상사로 찾아가 투스카니를 보러 왔다고 하자, “누가 타실 거예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제가 출퇴근용으로 탈 건데요”라고 대답하자, 판매업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수동 변속기 운전 연습하고 싶어서요”라고 설명을 덧붙여봐도, 판매업자는 여전히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깊숙한 곳에 숨겨진 투스카니
깊숙한 곳에 숨겨진 투스카니

매물이 있는 4층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삼중으로 주차된 차들 뒤 가장 깊숙한 곳에 투스카니가 있었다. “잘 안 찾는 매물이라…” 판매업자는 지나치게 솔직했다. 한참을 기다려 앞을 막고 있는 두 대의 차 키를 찾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넓은 곳으로 투스카니를 빼내어 세밀하게 살펴봤다.

투스카니
투스카니
흠집난 부분을 가려보려는 노력의 흔적들
흠집난 부분을 가려보려는 노력의 흔적들

2003년식 투스카니, 선루프까지 있는 고급형 GTS 트림이다. 14년이 된 모델인데도 페인트 박리현상 하나 없이 외관이 깔끔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완벽한 모습은 아니지만, 연식과 가격을 고려한다면 훌륭했다. 서너 군데 긁힌 부분에 덧칠해 둔 페인트 흔적에서 관리하려고 한 노력이 엿보였다.

투스카니 실내
투스카니 실내

오래된 차의 실내에서 자주 나는 퀴퀴한 냄새를 걱정하며 문을 열었는데, 오히려 향기가 나서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센터 터널 수납공간에 방향제가 놓여 있었고 세월의 흔적은 오히려 냄새가 아니라 시트와 내장재의 흠집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래도 심하게 벗겨지거나 뜯어진 부분 없이 잔 흠집이 대부분이라 괜찮았지만.

투스카니 운전석
투스카니 운전석
투스카니 센터페시아
투스카니 센터페시아

고급형 모델임을 증명하듯, 열선 시트와 오토 라이트 컨트롤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컵홀더는 살짝 누르면 툭 튀어나오는 방식이었다. 마치 포르쉐처럼! 아쉽게도 내비게이션과 후방카메라 등을 지원하는 내장 디스플레이는 없었다.

적나라한 수리의 흔적. 마음이 살짝 아파온다.
적나라한 수리의 흔적. 마음이 살짝 아파온다.

보닛과 트렁크를 열자 교환 9건과 판금 용접 2건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보험처리이력서를 통해 미리 확인해봤던 사실이라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워낙 저가의 매물이라, 판매업자는 딱히 사고 이력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성능상태 점검기록부에서 확인한 파워 스티어링 오일 누유 상태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투스카니 엔진룸. 오픈 흡기 튜닝이 되어 있다.
투스카니 엔진룸. 오픈 흡기 튜닝이 되어 있다.

겉모습은 오히려 기대했던 것보다 더 멀쩡했는데, 막상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게 아닌가! 판매업자는 오래 세워두어서 그렇다며, 클러치를 밟고 키를 꼽아 돌린 ‘키 온’ 상태에서 클러치를 살짝 들었다가 다시 밟으면 시동이 걸린다고 설명해줬다. 이렇게 하니 문제없이 바로 시동이 걸리긴 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급히 물어보니 출고 이후 장착한 ‘안전장치일 수 있다’는 불확실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차피 110만원짜리인데 타다 문제 있으면 폐차하자’는 생각으로 사러 왔지만, 막상 언제 어떻게 고장 날지 알 수 없는 차를 가져가자니 불안했다. 시승을 해보고 구매를 결정하기로 했다.

엠파크 랜드 뒤편에 구매할 중고차를 테스트해볼 수 있는 시승장이 있다.
엠파크 랜드 뒤편에 구매할 중고차를 테스트해볼 수 있는 시승장이 있다.

엠파크는 엠파크 랜드와 허브, 타워 등으로 나뉘는데, 내가 사려는 투스카니는 엠파크 허브에 있는 매물이었고 엠파크 단지 내 시승 장소는 랜드에 있었다. 시승을 해보려면 주차장을 빠져나가 일반 도로를 거쳐 엠파크 랜드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인데, 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시승을 요구하자 판매업자는 “밖에 나갔다 오면 세차 등 ‘상품화 작업’을 다시 거쳐야 한다”며 난색을 보였다. 잘못된 차를 사서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것은 각오한 일이라 괜찮지만, 혹시나 사고로 이어질 만한 문제는 없는지 불안해서 그렇다”며 “안전에 관련된 심각한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면 반드시 살 것이니 시승하게 해 달라”고 강력히 주장해, 간신히 비 맞으며 시승을 해볼 수 있었다.

투스카니 수동 변속기 레버
투스카니 수동 변속기 레버

다행히 1단부터 5단, 후진까지 모두 잘 변속됐다. 2단으로 변속하면 유난히 울컥거리는 점과 스티어링 휠의 헐거운 느낌은 조금 거슬렸다. 고속으로 달려보진 못했지만, 일반 도로 주행 속도 수준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어쨌든 당장 연습할 차는 필요하고, 쓸 수 있는 돈은 적고, 내 상황이 이만한 차를 더 찾긴 힘들 거라는 판단으로 구매를 결정했다.

투스카니 등록증, 계약서, 그리고 날 당황스럽게 만든 이전비 내역서
투스카니 등록증, 계약서, 그리고 날 당황스럽게 만든 이전비 내역서

판매업자와 사무실로 돌아가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110만원이 아닌 152만원을 이체하라는 게 아닌가. 취등록세 7%가 가격에 더해진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 취등록세 7만7천원이 더해져 117만2천원일텐데 152만원이라니 이상할 수밖에. 결국 항목마다 왜 이런 금액이 나오는 지 따져 물었다.

‘취등록세’는 실제 판매 금액이 아닌 나라에서 정한 ‘과세표준액’을 기준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다만 이전 과정을 실제로 진행하기 전에는 과세표준액을 정확히 알 수 없어서, 먼저 보험료 산정에 사용되는 기준으로 넉넉히 책정해 받아두고, 이전이 완료되고 나면 일부 환불이 될 거라고 설명했다. 취등록세 외에 ‘매도비’ 26만 5천원도 더해진다. 매매단지에 지불하는 수수료 같은 것으로 매매단지마다 금액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판매 가격에 취등록세와 매도비를 더한 것이 실제 구입 가격이 된다.

자동차 보험 가입 역시 필수다.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면 아예 차를 가져갈 수가 없다. 2003년식투스카니 GTS의 보험 가입기준가격은 190만원, 1년 보험료는 99만원으로 계산됐다. 자기차량손해를 제외해도 85만원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지경이다. 일단 보험 갱신까지 70일이 남은 스파크와 함께 묶어 관리하는 걸로 신청했다. 자기차량손해를 제외한 70일 동안의 보험료가 약 16만원이 나왔다. 자기차량손해를 포함한 스파크 1년 보험료가 47만원인데 말이다.

투스카니의 뒷태. 리어윙도 큼지막하게 달려있다.
투스카니의 뒷태. 리어윙도 큼지막하게 달려있다.

백만원에 장만해보겠다던 연습용 차는 결국 중고차 가격 110만원에 취등록세와 매도비 42만원, 보험 16만원을 더해 총 168만원이 들었다. 앞으로 중고차를 살 때는 취등록세와 매도비, 보험까지 미리 계산해서 예산을 정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눈물을 삼켰다. 연습용 차로 이거보다 더 적당한 것을 더 싸게 살 수는 없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투스카니 키. 저 버튼들을 장식일 뿐, 작동하지는 않는다.
투스카니 키. 저 버튼들을 장식일 뿐, 작동하지는 않는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152만원을 이체하고, 보험 가입까지 완료하자, 판매업자가 투스카니 키를 건네줬다. 스마트키는 커녕, 키에 달린 버튼조차 실제로 작동하지 않아, 문을 열고 잠그는 것부터 시동을 거는 것까지 모두 다 ‘키’를 이용해야 한다. 그동안 스마트키와 버튼 시동장치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퍽 실망스러웠다.

달려라 투스카니
달려라 투스카니

처음 시동을 켜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것보다 더 떨렸던 엠파크 정문 통과. 12년 만에 수동변속기 모델로 공도를 주행하려는 순간이다. 운전 면허 교육을 받을 때는 강사가 옆에 타 있었고, 면허 취득 후에 운전 연수 한 번 받은 적 없다. 혼자 수동 변속기를 조작해 운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문을 빠져 나오자 마자 맞닥뜨린 빨간 불. 정차했다 녹색 불을 보고 출발하려는 찰라, 어김없이 시동은 꺼졌다. 뒤차가 여러 번 경적을 울렸지만, 당황하지 않고 비상등을 켠 후 차분하게 대응했다. 다시 시동을 걸고 왼발에 온 신경을 집중해 부드럽게 클러치를 밟은 발을 뗐다. 다행히 한 번의 시도에 바로 성공.

엠파크에서 집까지는 불과 15분 거리다. 그러나 언덕과 내리막, 방향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갈림길과 로터리까지, 초보자에겐 험난한 코스가 예정되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경적 소리를 백 번쯤 들은 듯하다. 오늘따라 빨간 불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녹색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내내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러다 막상 시동이 꺼지면 덤덤하게 비상등을 켜고 다시 시동을 걸고 유유히 출발했다. 초반에는 정차 후 다시 출발할 때마다 시동을 다시 걸어야 했지만, 집에 도착할 때쯤에는 제법 익숙해져 시동은 꺼뜨리지 않았다.

투스카니
투스카니

걱정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수동 변속기 첫 ‘단독’ 주행을 무사히 마쳤다.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기 위해 온 신경을 두 발에 집중하고 엔진 소리로 상태를 파악하며 기어를 변속하는 건 예상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처음 엄마 차를 빌려 운전하기 시작했을 때가 생각났다. 어디든 무작정 차를 몰고 나가고 싶었다. 충격적인 연비가 발목을 잡긴 했지만. 주유 경고등이 들어온 상태에서 가득 주유하니 51 ℓ가 들어갔다. 그런데 계기반에 뜬 주행가능 거리는 고작 250km다. 연비가 고작 리터당 5km라고?

그래도 두 달간, 아끼지 말고 열심히 타고 다녀야겠다. 투스카니 먹이느라 내가 굶게 생겼지만.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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