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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사랑에 관한 남성 패턴, 에세이적 글쓰기로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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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사랑에 관한 남성 패턴, 에세이적 글쓰기로 담아”

입력
2017.03.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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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 구원과 초월, 원죄와 죄의식 등 심원한 주제에 천착한 작가 이승우는 신작 '사랑의 생애'에서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원초적인 주제 사랑을 꺼내 들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신과 인간, 구원과 초월, 원죄와 죄의식 등 심원한 주제에 천착한 작가 이승우는 신작 '사랑의 생애'에서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원초적인 주제 사랑을 꺼내 들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사랑에 관한 화자의 단상과 주인공들의 연애가 씨줄 날줄로 엮인다. 숨을 멎게 하는 화자의 밀도 높은 사유는 막장에 가까운 연애사를 예술의 수준으로 승격시키며 소설이 ‘언어 예술’임을 새삼 증명한다. 소설의 제목은 ‘사랑의 생애’(예담). 기독교적 색채를 배경으로 인간의 성과 속을 특유의 관념어로 빚어낸 이승우가 2012년 ‘지상의 노래’ 이후 5년 만에 낸 신작 장편이다.

소설 속 연애사는 단출하다. 형배는 자신을 짝사랑해 고백까지 했지만 “나는 자격이 없다”는, ‘자기 비하의 트릭’으로 물리쳤던 대학 후배 선희를 2년 10개월 만에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선희는 그 사이 새 연인 영석을 만나고 있다. 4세 때 부모를 잃은 영석은 선희에게 강한 모성애를 느끼며 “나무줄기를 감고 오르는 넝쿨식물처럼” 매달린다. 형배의 고교 동창이자 ‘자유연애주의자’ 준호는 “결혼해야 키스할 수 있다”는, 열성 기독교 신도 민영을 만나 “키스를 위해”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관념의 토르소”(문학평론가 김윤식)로 불린 이승우는 1981년 데뷔 후 30년간 독자층을 서서히 넓힌 대기만성형 작가로 꼽힌다.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가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면 가장 가능성 높은 작가’로 꼽으며 보다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3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이승우는 “사랑에 관한 에세이 같은 소설을 써 보려 했다. 에피소드는 이 단상을 담는 최소한의 용기로만 썼다”고 말했다.

-막장 연애사에 밀도 높은 사유를 켜켜이 쌓은 방식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 가벼움’을 연상시킨다.

“워낙 쿤데라 소설을 좋아한다. 내용은 막장인데 화자 서술에서 삶의 이면을 발견하게 된다.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영향 받은 건 사실이다. 내 소설의 기원은 이청준이다. 이야기를 인물에 녹여내고 화자가 주절주절 늘여놓는 걸 피하는데, 쿤데라는 그걸 자유롭게 한다. 이런 자유가 부럽더라. 작가가 제3의 인물처럼 자기 말하는 걸 시도한 게 전작 ‘지상의 노래’다. 그때부터 에세이적 글쓰기라고 할까, 우리에게 없는 전통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 작품은 보다 본격적으로 나온 것이다.”

-소설 속 인물마다 상징성을 갖고 있을 텐데.

“처음에는 주인공 남자 하나(형배)에 사랑과 관련된 모든 패턴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불가능하더라. 사랑은 사랑이 사람 안에 들어와서 하게 되지만, 숙주로서 그 사람이 가진 취향, 유전자, 환경에 따라서 사랑의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사랑의 몇 개 패턴을 만들다 보니까 그런 인물이 나왔다. (바람둥이) 준호, (애정결핍자) 영석을 양쪽 유형으로 뒀고 평균적인 인물은 형배다. 이념이 달라도 종교가 달라도 사랑할 수 있는데 사랑의 패턴이 다르면 사랑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쿤데라의 연애소설은 상당수가 작가 본인 얘기라는 말이 있다. 신작이 ‘경험의 벽’을 넘지 못한 게 아닐까. 선희, 민영을 보편적인 여성으로 보나?

“민영은 종교 같은 강한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을 사랑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려고 만든 캐릭터다. 선희는… 제가 여자를 잘 모르는 면은 있다. 남자는 자신이 얼마나 결핍 많고, 사랑 자체에 불순물이 많은지를 안다. 그런 남자가 사랑하는 건 허물 없는, 완전한 사람(여성)이다. 그간 내 소설에서 여성은 완전에 가까운 이상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여러 영역을 아우르며 사람을 보듬는 식이다. 이 소설에서도 선희가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남자들은 사랑에 치여서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자들로 나온다.”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와 당신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승우는 “‘사랑의 생애’ 속 유일한 주체는 사랑 그 자체”라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와 당신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승우는 “‘사랑의 생애’ 속 유일한 주체는 사랑 그 자체”라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 본인의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작품에 들어갈 때가 있다. 이 소설에도 갓 소설가로 등단한 서른살 선희가 지방 문학관 과장인 마흔살 영석을 “약함, 보잘것없음” 때문에 좋아한다.

“사실 나이 차이를 더 내고 싶었다(웃음). 내가 원하는 사랑 유형이 영석에게 들어가 있는 거 같다. 모성애적인 부분에 끌리는데, 내 초기 소설에 특히 그런 면이 있다. 모든 걸 받아들이고 희생하는 여성을 내 작품에 많이 넣는다. 왜곡일 수도 있는데, 내 결핍에 모성애적인 게 있다.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자라서 실체를 모르는데, 어릴 때 어머니 은혜에 대해서 글 쓰고 상 받곤 했다. 돌아보면 가증스럽다. 소설 속 제 관심은 남성의 사랑 패턴이었고 여성, 선희는 사랑의 대상이었다.”

-집필 기간 문단에서 여성 혐오가 이슈로 떠올랐다. 작품 쓸 때 자기검열 하게 되나.

“전혀 생각 못했는데 질문에 답하면서 여혐 논할 때 내 소설이 언급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불편함은 있다. 소설은 망가진 인물은 망가진 대로 드러내면서 주제를 드러내는 데, 그 자연스러움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거다. 예컨대 깡패가 나오는 부분에서 깡패답게 그리는 건데, 왜 깡패처럼 그리냐고 하면 뭐라고 하나. 여성이 비하되는 표현을 하나도 못하면 비하되는 현실을 드러내질 못하지 않나. 근본적으로 (여성혐오 문제에) 공감한다. 지금까지 간과해온 게 사실이고. 그런데 성경을 읽어도 (지금의 기준에서 여성혐오라 할 부분이) 나온다. 간음, 살인, 근친상간까지 잔뜩 나오는데 추악한 책이 아니지 않나. 2,000년 전 가부장제 얘기를 시대를 무시하고 21세기 기준으로 읽는 독자는 없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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