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직 때 용역감독 실적 부풀려
입찰 때마다 복사해 ‘재활용’ 관행
전북도, 아무런 조치도 없이
“현황 파악 어렵다”만 되풀이
전북지역 자치단체들이 퇴직한 기술직 공무원들에게 재직시절 각종 기술설계용역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가짜 실적증명서를 발급해주고 있는데도 관리당국인 전북도는 뒷짐만 지고 있다. 이 가짜 실적증명서가 민간업체에 재취업한 전관들의 ‘용역 수주용’으로 변질되고 있지만 감사나 조사는커녕 증명서 실태 파악조차 못해 전ㆍ현직 공무원 봐주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6일 지역 설계업체 등에 따르면 전직 기술직 공무원들에게 발급된 가짜 실적증명서가 여전히 용역 입찰의 사업수행능력평가(PQ)에 제출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주시의 한 엔지니어링 업체 관계자는 “공무원 출신 참여기술자들이 허위 실적증명서를 한 번 발급받으면 이를 복사한 뒤 용역입찰 때마다 매번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선 자치단체들이 가짜 실적증명서를 여전히 남발해 부실업체 선정 우려가 나오지만 도는 현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증명서 발급은 민원실 접수와 발주부서 확인을 거쳐야 하지만 허위 실적증명서의 경우 민원실 접수를 하지 않고 발주부서와도 상관 없는 부서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발급되면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관들의 가짜 증명서는 공무원 재직시절 용역 수행 경험이 없고 관련 부서에 근무하지 않았는데도 발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술한 증명서 발급 체계와 전관예우 관행 탓으로 대부분 사업 수행기간과 금액이 부풀려졌다.
군산시청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다 퇴직 후 설계업체에 취업한 A(68)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A씨의 실적증명서에는 2007년 군산시가 발주한 상수도설계 용역비 6,400만원을 2억3,600만원으로, 사업기간은 2개월을 1년으로 부풀려져 있었다. 특히 A씨는 퇴임 직전인 2007년부터 2008년까지 1년간 20여건의 실적이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었지만 A씨는 상하수도 관련 부서 근무경력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A씨의 경력증명서가 조작된 것이다.
전북도 본청 출신이 일선 시ㆍ군의 발주 사업 실적까지 가로채 실적을 부풀리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2년 전 퇴직하자마자 지역의 한 민간설계업체에 취업한 전북도 기술직 공무원 출신 B(59)씨의 실적에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전주, 익산, 정읍, 완주 등 도내 시ㆍ군 상하수도설계 감독 경력 10여건이 포함돼 있었지만 B씨는 해당 지자체 근무경력이 없다. 그나마 증명서 발급도 엉뚱한 재난안전과에서 발급해줬다.
설계업체의 한 관계자는 “용역 발주청에서도 심사를 강화하고 있지만 전ㆍ현직 공무원 간 오랜 유착관계가 쉽게 근절되지 않아 허위 증명서가 남발되고 이 증명서가 여전히 용역 입찰에 제출되고 있다”며 “수사기관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전북도 관계자는 “실적증명서가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발급된 데다 퇴직 공무원 수가 많아 현황 파악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도를 비롯해 일선 시ㆍ군의 증명서 발급 현황이 확보되면 감사나 조사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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