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탄핵심판 결정 앞두고 우려 증폭
국민 다수가 원하지 않는 혼란은 기우
국가위기 헤쳐 나갈 새로운 리더십 필요
추운 겨울을 견디며 지나온 긴 탄핵 정국의 끝이 보인다. 이번 주 후반, 늦어도 내주 월요일인 13일까지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나올 것이다. 결과가 인용이든 기각이든 지난해 9월 20일 최순실씨가 일간지 1면에 등장하면서 시작된 국정농단과 탄핵 정국이 일단락 되는 셈이다.
우려도 많다. 탄핵 정국의 끝이 새로운 갈등과 대립의 시작점이 될 수 있어서다.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로 양분된 광장에서 분노와 증오의 에너지가 증폭돼 왔음에 비춰 새로운 혼란의 개연성이 농후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헌정사는 갈등과 혼란을 딛고 전진해 왔다. 누구는 혁명을, 또 누구는 시가전과 아스팔트의 피를 운위하지만 다수 국민이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니다. 지레 걱정하고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다. 꽃샘 추위가 사나워도 화창한 봄날은 오고야 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많이 억울해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헌재 최종변론에 제출한 최후진술 의견서에 그 억울한 심경을 조목조목 담았다. “지금껏 제가 해 온 수많은 일들 가운데 저의 사익을 위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으며, 저 개인이나 측근을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거나 남용한 사실은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잘못이 있다면 주변(최씨)을 너무 믿은 나머지 “제대로 살피고 관리하지 못한 불찰”이라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 자료와 관련 인사들의 진술 등을 통해 드러난 최씨의 국정농단과 사익추구, 박 대통령 권한남용 등의 정황은 그렇게 간단하게 부정될 수준이 결코 아니다. 진보 보수 성향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언론이 추적해 보도한 내용들을 과장이나 가짜 뉴스로 몰아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 대통령 취임 초부터 도무지 이해가 안 됐던 이상한 인사나 정책결정, 불통이 ‘최순실’이라는 고리를 끼우면 신통하게 의문이 풀리자 무릎을 친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박 대통령은 일반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40년 지기’인 최씨의 의견을 참고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수한 인재가 모인 공적 조직을 외면하고 고위직책 인사와 정책 결정의 마지막 단계를 아무런 공적 직함이 없는 최씨에게 맡겼다. 자동차 도색 후 열 처리 하듯 국사 결정 마지막에 ‘최순실 처리’한 셈이다. 여기에는 두 사람 간 가족 이상의 관계를 넘어 무속적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게 나라냐”는 국민들의 분노와 참담한 심정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박 대통령의 항변은 6일 발표된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 결과, 그에 앞선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결과, 그리고 6개월에 걸친 주요 언론들의 추적보도 내용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이 괴리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정은 헌재에 달렸다. 조만간 8명의 헌법재판관들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박 대통령이 직무수행 자격이 있는지 현명한 판단을 내려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에 앞서 개인적으로 새판을 짜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바람이 있다.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너무 많은 실망을 안겨 줬다. 그에게 한 표를 던진 국민이나 표를 찍지 않았지만 대통령으로서 성공하길 바랐던 많은 국민을 배신했다. 이미 국정을 이끌어 갈 자격과 국민의 신임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지금 억울해 할 사람은 박 대통령이 아니라 그런 기대와 희망을 품었던 국민들이다. 지난 6개월 국가 리더십 공백으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고, 이미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대가를 치렀다.
나라 안팎으로 심각한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설사 탄핵 기각 또는 각하로 박 대통령이 직무를 회복한다 해도 이 위기들을 헤쳐 나갈 리더십과 동력을 발휘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다 닳아버린 국가운영 리더십 배터리를 억지로 충전하려 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맞게 업그레이드 된 새 배터리를 장착해야 맞다. 유력시 되는 새 배테리 모델에 대해 위험성을 우려하는 시각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다. 비록 시간이 많지 않지만 보완이 가능하고 다른 모델로 대체도 전혀 불가능한 게 아니다. 새봄에는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어 갈 새판을 짜야 한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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