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현 대통령 싸움 비화 조짐
FBI가 도청 연루 오해받을 우려
법무부에 “거짓임을 공표해달라”
백악관 “의회에 조사 요구” 공세
최고위 관리가 대통령 맞서 비판
NYT “놀랄 만한 전개” 평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향해 제기한 도청 의혹을 두고 사태가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미 법무부 최고위급 인사인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직접 나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는 사상 초유의 일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의 5년 전 발언까지 끄집어내 강공을 퍼붓고 있다.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코미 FBI 국장은 전날 법무부에 대선 동안 오바마 전 정부로부터 도청 당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거짓임을 공표해달라고 요청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 행정부 고위 관료는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며 “코미 국장은 도청 주장이 확산될 경우 FBI가 (도청에 가담해) 법을 어겼다고 오해 받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고 덧붙였다. 코미 국장과 같은 사법당국 최고위급 관료가 현직 대통령에 맞서 비난하는 일 자체가 놀랄 만한 전개라고 NYT는 평가했다. 코미 국장의 발언으로 파문이일자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부대변인은 6일 ABC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국장의 도청 부인 발언을 수용할지를 묻자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며 코미 국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코미 국장의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날 공론화한 도청 의혹에 대한 반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새벽 트위터에 “끔찍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직전 트럼프 타워의 전화를 도청했다는 사실을 방금 알았다, 나쁜 사람!”이라는 글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정권 출범이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전임 정권에 정면 승부를 걸은 것. 하지만 두 정권에 발을 걸치고 있는 FBI에도 활시위를 당긴 격이 되면서 정부 내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굽히지 않고 특유의 막무가내식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논란 하루만에 다시 트위터에 “러시아 대통령에게 ‘선거 후엔 좀 더 유연해질 것이라고 블라디미르에게 전하라’고 몰래 말한 사람은 누구냐?”는 글을 올렸다. 역시 오바마 전 대통령을 겨냥한 말로, 오바마는 2012년 3월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중 취임 2개월을 앞둔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미국의 유연화를 예고한 사실이 전해져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백악관은 이미 의회에 도청 의혹에 대한 조사를 의뢰해 전ㆍ현 정권 갈등을 장기화하는 작업에도 돌입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5일 트위터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을 규명하기 위한 의회 조사의 일부로, 2016년에 실제 행정부의 수사 권한이 남용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의회 정보위가 감독 권한을 행사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발표했다. 백악관의 강경 행보는 트럼프 행정부가 계속되는 러시아 유착 의혹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자 판도를 뒤집는 ‘한 방’을 만들겠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 측은 의혹에 대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박한 가운데, 민주당은 도청 의혹이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척 슈머(뉴욕)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5일 “의혹이 사실이라면 법원이 정부 기관에 감청 승인을 내려줄 만큼 중대한 사유가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의 측근의 위법 행동이 방증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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