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캠프가 당과 정부 점령군 돼선 안돼”
실무형 캠프 지향… 의원들도 외곽지원 절충
‘선의’ 발언 사과보다 진의 설명 먼저
상대방 공격하는 네거티브 메시지는 ‘퇴짜’
“뻔한 거짓말 안 된다” 묵힌 자료도 수두룩
安 “참모는 함께 비전 만들어가는 동지”
안희정 충남지사 캠프는 안 지사의 이른 바 ‘선의’ 발언 이후 급전직하하는 지지율 때문에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있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 참석에 앞서 안 지사가 여의도 캠프에 들른 2일도 분위기는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팀장급 참모 회의가 진행 중인 캠프 사무실로 들어선 안 지사의 얼굴은 환했다고 한다. 안 지사는 “지지율에 좌고우면 말고, 우리가 걸어왔던 길로 뚜벅뚜벅 갑시다”는 짧지만 묵직한 말을 남기고 홀연히 토론장으로 향했다. 안 지사의 한 마디에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쏙 들어갔다고 한다. 권오중 정무특보는 “지지율과 가치를 맞바꿀 수 없다는 안희정의 소신이 캠프의 최고 목표가 됐다”고 설명했다.
“캠프가 집권하는 게 아니다”
여의도 국회 앞 동우국제빌딩 8층에 위치한 안희정캠프 사무실에선 아침마다 치열한 자리 경쟁이 펼쳐진다. 70명 남짓한 캠프 실무진이 230㎡(약 70평)가량의 공간에 모여 있다 보니 의자 한 개도 추가할 여력도 없을 정도로 비좁기 때문이다. 캠프 관계자들은 “교수들도 정책 제안만 받겠다고 돌려보내고, 의원들도 캠프에 합류시키지 않고 있다”면서 “사람 쫓아내는 게 하루 업무 중 주요 일과”라고 말할 정도다. 안 지사가 “선대위는 꾸리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캠프는 실무형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추가로 합류 의사를 밝히는 의원들의 경우 공개 지지선언 이후 캠프 외곽에서 지원하는 식으로 절충한다는 방침이다.
전 ㆍ 현직 의원들에게 각종 직책을 나눠주고, 900여명의 교수진 등 유명인사 영입에 공을 들이며 매머드급 진용을 꾸리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 캠프와는 정반대다.
의도적으로 스몰 캠프를 지향하는 이유는 “선거는 캠프가 아니라 당이 치러야 한다”는 안 지사의 소신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이른바 ‘금강팀’을 이끌었던 안 지사가 역설적으로 캠프를 최소화하고 당 조직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캠프 관계자는 “특정 후보 캠프가 집권 이후 당과 정부를 점령군처럼 접수해 행세할 때 야기되는 국정운영의 폐해와 한계를 누구보다 절감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안 지사 스스로 캠프 멤버들에게 “일렬종대로 사람 세우는 순간 다 총맞아 죽는다”거나 “인연이 아니라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희정은 소신 독재자”
안희정 캠프는 사실 “안희정의 개인기가 80%다”고 말할 정도로 후보 역량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최근 논란이 된 선의 발언 수습 과정은 안 지사의 소신론과 캠프의 현실론이 맞부딪힌 대표적 사례다. 캠프에선 선한 의지 발언 직후 당장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찌감치 분출됐지만, 논란 초반 안 지사는 ‘발언의 진의를 온전히 대중에게 설명하는 게 먼저다’라며 소신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캠프 관계자는 “밖에서는 계산이니 정략이니 해석하지만, 그냥 안희정의 스텝대로 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다 보니 일종의 ‘안희정 바이블’도 거론되고 있다. 메시지팀의 경우, 상대방을 공격하는 포인트를 포기할지언정 ‘네거티브’는 지양한다. 안 지사가 경쟁 후보를 노골적으로 깎아 내리는 듯한 비교 표현을 꺼려서다. 출마선언 전후로 캠프에선 ‘더 좋은 정권교체’라는 슬로건이나 ‘문재인은 힐러리, 안희정은 오바마’ 등의 메시지를 띄웠으나 안 지사의 거부로 사장됐다고 한다. 결국 안 지사는 표현 자체는 밋밋하지만 가치를 부각시킬 수 있는 ‘한번 더 생각하면 안희정’ 과 ‘정권교체 그 이상의 가치’를 택했다. 관훈클럽 토론회 모두발언도 70% 이상을 본인이 직접 수정하는 등 안 지사는 스스로 체화된 말이 아니면 용납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정책팀은 ‘뻔한 거짓말은 안 된다’는 안 지사의 소신에 맞추느라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안 지사가 “최고지도자는 방향만 제시하면 된다”거나 “구체적 수치화는 금물이다”는 식의 주문을 강조하는 탓에 묵혀두는 자료가 수두룩하다고 한다. 캠프 관계자는 “정책 우선순위와 재원 상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안 지사의 피드백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고 했다.
캠프 식구들은 이런 풍경을 두고 ‘안희정의 소신 독재’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프가 굴러가는 것은 안 지사가 캠프 식구들을 참모가 아니라 동지로 대하기 때문이다. 실제 안 지사는 참모를 봉건적 군신관계가 아니라 ‘민주주의 시민사회에서 공적 발전을 위해 같은 가치와 목표를 향해 일하는 동지’로 보고 있다. 2002년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참모들을 ‘민주화 역사의 전선으로부터 나한테 파견된 사람들이다’고 소개했던 데 감명을 받은 뒤 생긴 태도라고 한다. 서누리 정책팀장은 “안 지사가 젊은 참모들에게 곧잘 하는 말이 ‘당신들의 꿈과 신념을 나에게 투영하라’는 얘기다”며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다”고 말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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