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을 바꾼 수학여행 은사님
3개 전공 이수 도운 대학 친구들
물심양면에 봉사자 꿈꾸게 돼
“사회적 배려 닿지 않는 학생과
마음 나누는 교사가 되고 싶어”
2일 오전 서울 중구 인현동 덕수중학교 교무실로 휠체어를 탄 한 남성이 들어왔다. 낯선 얼굴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던 교사들은 이내 환한 얼굴로 “반갑다”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긴장 가득했던 남성 얼굴도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자리로 이동한 그는, 눈 앞에 적힌 다섯 글자를 확인하곤 활짝 웃었다. ‘교사 박성욱’. 전국에서 유일한 지체장애1급 중등교사의 첫 출근은 그렇게 시작됐다.
교사 박성욱(24)씨는 선천성장애로 사지를 전혀 못 쓰고 얼굴만 움직일 수 있다. 입에 특수마우스(입술마우스)를 물고 불어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친구에게 수업공책을 빌려서 부모나 도우미가 책장을 넘겨주며 공부했다. 일반학교를 졸업하는 것만도 기적이었던 그는 2010년 교사라는 꿈을 그렸다.
당시 그는 일본 후쿠오카(福岡)로 정해진 고교 2학년 수학여행을 ‘그림의 떡’이라 여겼다. 담임교사 유상목씨 생각은 달랐다.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이유로 인생에 한 번뿐일 고교 수학여행을 포기하는 건 옳지 않다”며 박씨와 어머니 안선희(52)씨를 끝까지 설득했다. 말뿐이 아니었다. 유씨는 여행사에 장애인 탑승이 가능한 버스부터 구해달라고 요청한 뒤, 휠체어 이동이 원활한 여행 경로를 직접 짰다. 박씨는 꿈 같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나도 이런 스승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2012년 서강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박씨는 이후 ‘봉사자’라는 목표까지 생겼다. “강의실 이동은 물론, 독서와 필기를 선뜻 도와준 친구들 덕에 국어국문학, 심리학, 교육문화학 등 3개 과목을 복수전공할 수 있었거든요.” 대학 관계자에 따르면 그의 수업 참여를 도운 학생은 50여명. 지난달 14일 졸업식에서도 박씨는 총장특별상을 받고, 어머니 안씨는 감사패를 받으면서 두 사람은 “친구들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박성욱도 없었을 것”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는 지난달 초 2017학년도 공립중등교사임용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5일 본보와 만나 “평생 도움만 받아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됐다는 게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여전히 수업을 위해선 일상을 도울 활동도우미와 판서 등 지도를 도울 보조교사의 힘이 필요하지만, 교과서를 미리 구해 파워포인트(PPT)로 학습교재를 만들어 놓는 등 열정만큼은 중견교사 못지 않다. 심리상담사자격증도 땄다. ‘중2병’이 도지는 등 한창 예민한 시기를 보낼 제자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도움을 베풀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사회적 배려가 닿지 않는 친구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그는 이제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는’ 세상을 꿈꾼다. 당장 배려와 관심을 끊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박씨는 “모든 공공시설에 장애인 배려시설이 갖춰지고,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개선돼 일상을 평등히 누릴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박씨는 학교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나로 인해 학교에 장애인편의시설이 하나 둘씩 더 갖춰져 가고, 이를 후배 교사나 제자들이 누릴 수 있다면 그 또한 교사로서의 큰 보람일 것”이라고 했다. 그가 교편을 잡은 덕수중은 곡선형경사로, 장애인전용화장실, 엘리베이터 등 장애인편의시설이 대부분 갖춰져 있지만, 모든 학교가 그런 건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관내 초중고교 장애인편의시설 설치비율은 80%대다. 박씨의 제자들, 박씨 같은 교사들이 늘어나면 차차 그 수치도 100을 향해 갈 것이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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