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A사는 3년 연속 책정했던 연구개발(R&D) 투자비용 10억원을 올해 예산에서 전액 삭감키로 했다. 대기업 납품에만 의존하는 회사 매출 구조를 바꿔보려고 R&D에 나서봤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연간매출 수백억원에 그치는 중소기업이 장기적인 연구개발에 나선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대기업이 원하는 부품을 납품해 매출을 올리는 게 가장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길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국민경제에서 중소기업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대기업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경영활동을 하는 중소기업 수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5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발표한 ‘중소기업 위상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2014년 기준 대한민국 사업체 수의 99.9%(354만 5,473개)를 차지하고, 전체 근로자의 87.9%(1,402만 7,636명)가 중소기업에 종사한다.
중소기업의 전체 생산액도 748조2,000억원으로 국내 기업 생산액의 48%를 차지하며 부가가치 창출액은 260조원으로 이미 대기업(248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성장이 정체된 대기업은 생산액이 2년 연속 줄어들며 우리나라 전체 생산액의 증가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경제에서 중요해진 위상과 다르게 중소기업은 홀로 자립하지 못하고 여전히 대기업 의존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실태조사를 보면 지난해 기준 제조업 중소기업 47.3%는 대기업의 납품에만 의지하는 ‘하도급’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납품한 총액도 263조원으로 10년 사이 두 배나 증가했다.
중소기업이 좀처럼 홀로 자립하지 못하는 것은 R&D 투자 등 혁신 활동이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중소기업 기술혁신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기 10곳중 7곳은 연구개발 활동을 하지 않는 R&D 비투자 기업이다. 대기업 84.6%가 R&D 투자 활동을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중소기업의 글로벌 기술 수준을 저하 시키는 결과로 직결된다. 세계최고 수준 대비 중소기업 기술수준은 2005년 75.8%에서 2015년 76.6%로 10년 간 고작 0.8%포인트 상승했다. 한국 중소기업의 1인당 부가가치 생산성 추이도 2006년 33.2%에서 2014년 32.5%로 떨어졌다. 중소기업의 덩치는 커졌지만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체력은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의 혁신활동 부족을 중소기업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납품가 인하, 기술 가로 채기 등 원청업체의 갑질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이 R&D 활동에 필요한 자금과 인력을 구한 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생산설비용 공구를 제작하는 B사 대표는 “개발인력을 뽑아놔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대기업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부지기 수”라며 “힘들게 자금을 구해 R&D투자를 해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힘들게 기술을 개발해도 시장에 제품을 내놓는 것으로 연결되는 제품화 성공률은 30%대에 불과하다. 대기업이 자본력을 앞세워 비슷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순간 중소기업 제품은 설 곳을 잃는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이란 게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어서 대기업이 이를 따라잡는데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며 “중소기업이 개발한 제품을 모방해 내놓는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중소기업의 혁신을 유도하기 위해 중소기업 R&D 지원예산을 매년 확대해 운영 중이나 성과는 미흡한 상태다. 지난해 중소기업 지원 예산은 2조 9,836억원으로, 제도가 시행된 1998년에 해 7.7배가 증가했다. 하지만 2015년 기준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성공률은 48.8%로 10년전 61.1%보다 더 떨어졌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장은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에 대해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정부의 정책과 의지가 중요하다”며 “R&D 지원도 정부가 무조건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더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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