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ㆍ중견기업이 저성장의 뉴노멀시대와 4차산업혁명 시대의 주역으로서 신성장의 기회를 열기 위해선 글로벌경쟁력을 갖추는 ‘퀀텀점프(대약진)’가 절실하다.”
5일 서울 관훈동 중소기업청 옴브즈만실에서 만난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시대의 요구인 일자리 창출과 기술 혁신에는 덩치 큰 대기업 보단 창의와 혁신을 무기로 한 중소ㆍ중견기업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주 청장은 “지난해 대기업의 수출이 8.4% 감소한 상황에서도 중기는 2.1% 성장했다”며 “과거엔 조연에 그쳤던 중기가 이젠 당당한 주연의 자리에 올라섰다”고 말했다. 과거 고성장 시대엔 대기업의 공헌도가 높았지만 저성장 시대에선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일자리 문제다. 2010년 이후 국내 일자리 창출의 90% 이상을 중기가 담당하고 있는데 비해 대기업은 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기가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된 상황에선 지원 정책도 씨뿌리기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결실을 맺도록 경쟁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중기의 적(敵)은 대기업이 아닌 해외기업이다. 자유무역협정(FTA) 등은 양날의 검으로 이젠 문 닫아 걸고 우리끼리 놀 수가 없다. 내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내수를 지킬 경쟁력이라면 시장이 100배 큰 밖으로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중기의 글로벌 경쟁력이 절실한 까닭이다.”
문제는 중기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다. 대기업과의 급여 차이가 초봉 기준 40%에 이르는 것도 넘어야 할 산이다. 주 청장은 “세계 기준으로 볼 땐 우리 중기의 급여가 낮은 게 아니라 대기업의 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라며 “급격한 임금 차이가 취업시장의 미스매치와 동반성장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당장 중기 임금을 대기업 수준으로 올리긴 쉽지 않다. 주 청장은 기업을 찾아 다니며 ‘미래성과공유제’를 적극 제안한다고 했다. “급여 올릴 재원이 당장 없지만 앞으로의 추가 수익에 대해선 직원과 나누겠다고 약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의 수익을 공유하자고 하면 직원들은 없던 새로운 수익을 찾아내 결국 기업과 직원 모두 이익이 생긴다는 것. 직원들에겐 내 회사란 주인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의식혁명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기의 또 다른 문제는 45%대에 이르는 대기업 하청 의존 구조다. 주 청장은 “한 기업에만 100% 공급하는 관계에서 ‘갑질하지 마라’, ‘가격 후려치기 말라’ 요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동반성장은 힘의 균형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절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일본의 도쿄형과 교토형 기업구조로 설명했다. 전후 경제성장기엔 닛산 등 대기업 중심의 구조인 도쿄형 중기들이 좋았지만 납품할 대기업이 가까이 없어 저절로 해외시장을 개척해나간 교토형 기업이 장기적으로 훨씬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독립적이고 세계화가 몸에 밴 교토형 기업들은 다 흥했지만 대기업 한 곳만 바라보던 도쿄형은 다 망했다”며 “교토형은 한 기업의 거래비중이 10%를 넘으면 최고경영자(CEO)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가이드라인이 있을 정도로 시장다변화에 충실하다 보니 불황에 강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주 청장은 지금의 제2 벤처 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역대 최고 벤처 붐이 불고 있다. 2000년대의 1차 벤처 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펀드 조성액만도 지난해 3조2,000억원에 달했다.” 그는 “제 아이에게도 대기업엔 가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해진 월급 그 이상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명문대학 졸업생들이 스타트업으로 달려가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기 때문이다. 실패하더라도 금세 다른 회사로 옮겨갈 수 있는 튼튼한 벤처생태계도 한몫 한다.
“벤처캐피탈이 좋은 기업만 골라 투자하듯 직장인도 자기 인생을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안정된 급여와 칼퇴근을 최선으로 여기는 직업문화에선 미래의 역동성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성원 선임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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