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구 신오쿠보(新大久保)거리는 한류의 성지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 3~4년 사이 이 거리는 오직 ‘한류’가 아닌 중국, 네팔, 인도, 태국, 이란 등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의 다문화로 채워졌다.
재일한국인연합회에 따르면 2012년 봄 500개가 넘던 신오쿠보 거리의 한국계 점포들은 올해 초 320여개로 4년여 만에 40%나 줄었다. 주민 수도 다른 아시아계가 폭발적으로 늘어 신주쿠구에 거주하는 베트남인의 경우 올해 3,400여명을 넘어서 5년전의 15배에 이르렀다. 한국 문화의 색채가 강한 신오쿠보 거리는 특히 중국인들과 그들의 문화에 의해 빠르게 점령당하고 있다. 중국상점이 늘고 중국 관광객이 넘치는 추세는 일본사회 전반적인 현상이지만 이 일대는 유독 눈에 띈다. 지난 4일 오후에도 이곳 대형면세점 앞에선 중국 단체관광객들이 서너 대의 버스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난해 상가 전체가 한국상점이던 한 빌딩만 봐도 1층엔 삼겹살집이 버티고 있지만 2층은 베트남음식점, 3층은 네팔식당 등 ‘다문화 식당 단지’로 변해있다. 이들 식당의 자리를 가득 메운 관광객은 한때 한류의 성지라 불렸던 ‘명성’을 무색케 하듯 중국인들이었다.
신오쿠보 거리 상가 1층에 최근 개업한 네팔 음식점 ‘도쿄 로디 클럽(TOKYO RODHI CLUB)’은 다문화의 색채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었다. 마핸드라 바이야(50) 사장은 “우리 식당의 ‘모모(네팔 만두)’를 먹기 위해 주말마다 수많은 네팔인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네팔에서 유명한 여가수가 일본에 와 우리 가게도 출연료를 주고 초청했다”고 소개했다. 한류의 성지에 네팔인들이 열광하는 가수가 등장, 자국 교포들을 위해 공연을 한 것이다. 신오쿠보 거리에는 최근 1년내 네팔인이 차린 가게만 30곳이 성업 중이다.
다행스럽게도 바닥을 쳤던 신오쿠보의 한류 분위기는 회복세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최근 악화된 한일관계에도 골목 호떡집엔 일본 여성들이 길게 줄을 섰고 곳곳에서 삼겹살 굽는 냄새가 손님을 유혹했다. K-POP 공연장 앞에도 팬들이 늘어섰다. 무슨 공연을 하느냐고 묻자 “여기서만 활동하는 아이돌그룹이 방탄소년단이나 동방신기 같은 유명 한국 아이돌그룹의 히트곡을 대신 불러준다”며 들뜬 표정이다.
특이한 것은 일본내 한류 원정팬도 많다는 점이다. 시즈오카(靜岡)현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도쿄를 찾은 이시카와 미치요(石川美智代ㆍ58)는 “이번 달만 3번째 이곳을 찾았다. 정치와 내 취미생활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마츠무라 치에코(松村智英子ㆍ56)는 “한국 라면과 김밥을 먹고 호텔에서 잔 뒤 내일 공연을 한 번 더 볼 것”이라며 “신오쿠보가 한때 가라앉았지만 이제 다시 붐비고 있다”고 했다. 2017년 신오쿠보는 아직 죽지 않은 한류의 경쟁력에 더해 아시아 각국의 문화가 맞부딪치는 ‘다문화 격전장’의 모습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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