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기타도 잡은 박지윤
가수 박지윤(35)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를 작곡하며 전자기타를 잡았다. 곡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삶에 대한 혼란을 차가운 전자기타 연주로 쓸쓸하게 시작해 보고 싶어서다. 박지윤은 직접 연주한 녹음 파일을 친한 음악 동료인, 밴드 메이트 출신 기타리스트 임헌일에 보냈고, 그와 함께 편곡 작업을 거쳐 곡 후반 전자기타 연주의 강렬함을 살렸다. 이 곡은 지난 2일 발매된 박지윤의 새 앨범 ‘박지윤9’에 실렸다. 하늘거리는 붉은색 옷을 입고 ‘성인식’(2000)을 불렀던 박지윤에겐 춤이 아닌 기타가 이젠 더 편한 표현의 도구가 됐다.
5년 만에 새 앨범을 낸 박지윤은 더 단단해졌다. JYP엔터테인먼트(JYP)를 떠나 2007년 낸 7집 ‘꽃, 다시 첫 번째’ 앨범에도 자신의 얼굴 사진을 싣지 않았던 박지윤은 9집 타이틀곡 ‘그러지 마요’의 뮤직비디오에서 진한 화장을 하고 보란 듯이 강렬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마주한다. 댄스 가수에서 통기타를 잡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길을 걸으며 7집 이후 소박한 모습만 보여줬던 박지윤의 화려한 변신이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소니뮤직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박지윤은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당한 여성 안엔 ‘박지윤’도 포함된다. 그는 앨범 제목에 이름을 처음으로 넣어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줬다. 박지윤은 9집을 직접 프로듀싱했고, 수록 곡 10곡 중 8곡을 작사 작곡했다. 통기타와 피아노 연주로 서정성을 강조한 7~8집과 맥을 같이하면서, 전자 음악(‘사랑하고 있어’)을 버무리며 음악의 폭을 넓혔다.
‘하늘색 꿈’ 후 20년… “잘 버텨왔다는 생각”
1997년 노래 ‘하늘색 꿈’으로 데뷔한 박지윤은 20대에 혹독한 성장통을 치렀다. ‘성인식’으로 스타가 됐지만, 가수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 2003년 6집 ‘우 트웬티 원’을 내고 JYP를 떠났다. 박지윤은 “누군가가 만들어 준 걸 열심히 했지만, 그게 결국 내 것이 되진 않더라”고 옛 일을 떠올렸다.
6년의 공백을 깨고 7집에서 통기타를 들고 온 박지윤의 음악적 변화는 ‘할 줄 알어’ 등 그의 댄스 곡에 길들여진 일부 음악 팬들에겐 충격이었다. 1989년 ‘담다디’로 친숙함을 준 이상은이 1995년 고대 시를 활용한 ‘공무도하가’를 낸 일과 비슷한 반전이었다. 박지윤은 “나를 찾는 시간 후 생긴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 채 ‘하늘색 꿈’을 불렀던 고등학생 소녀는 미국 포크송 싱어송라이터인 데미안 라이스와 레이첼 야마가타,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취향을 찾아갔다.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기타를 배웠고, 작사와 작곡에도 자연스럽게 욕심을 내게 됐다.
격변의 시간을 거쳐온 만큼, 그에게 올해 가수 데뷔 20주년은 뜻 깊다. “신기해요. 아직도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박지윤은 “잘 버텨왔다는 생각도 든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는 17, 18일 서울 마포구 벨로주에서 단독콘서트를 열고 팬들과 만난다. 그가 단독 공연을 열기는 2009년 이후 8년 만이다.
“제가 좋아하는 걸 하려고요, 비록 소수가 즐길지라도.”
직접 찍은 사진과 짧은 글을 함께 새 앨범에 실은 박지윤은 수록 곡 ‘겨울이 온다’ 가사와 함께 “세상은 겨울”이라며 발자국 하나 없는, 눈밭의 사진을 올렸다. 박지윤은 지난해 윤종신이 프로듀서로 있는 미스틱엔터테인먼트를 나와 ‘박지윤 크리에이티브’란 1인 기획사를 만들어 다시 혼자가 됐다. 매니저도 없다. 그는 인터뷰 장소에도 직접 차를 몰고 왔다. 그런 그에게 지금은 인생의 사계절 중 어디 쯤일까.
그는 주저 없이 “봄”이라고 답했다. 박지윤은 “(9집으로)오랜 만에 새로운 시작을 알렸잖느냐”라며 “지금이 바로 내게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이라면서 수줍게 웃었다. 박지윤은 앨범 마지막에 활짝 웃는 사진을 실었다. 음악을 정말 즐기고 있다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성인식’ 때와 음악을 대하는 제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이제 제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중요해요. 제가 행복하게 음악을 해야, 듣는 분도 즐거움을 느낄 것이라 믿으니까요. 비록 많은 사람이 아닌, 소수가 즐길 지라도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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