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 도망쳐 나오는 그곳으로 그들은 목숨을 걸고 들어갔다.
2001년 3월 4일 새벽 3시 48분, 정적을 깨는 비상벨과 함께 서울 서부소방서 소속 김철홍 소방교 등은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신고가 들어온 홍제동 주택가 화재 현장까지 출동하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가구주택이 밀집한 화재현장은 소방차 접근이 어려웠다. 불법 주차된 이면도로의 차량을 헤치고 80여m의 골목길을 내달린 소방관들이 시뻘건 불길을 잡기 시작하자 현장에서 탈출한 집주인 선 모씨가 대원들을 붙잡고 애원했다.
“1층에 아들이 있어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 어머니는 정신병을 앓았던 아들이 홧김에 불을 지르고 이미 현장을 떠난 사실을 몰랐다.
대원들은 주저 없이 화마가 넘실대는 건물 안으로 진입했고, 잠시 후 ‘우지끈’소리가 나며 천정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와, 빨리 나와! 집이 무너진다!” 밖에서 터져 나온 외침은 벽돌로 지어진 낡은 건물이 맥없이 무너지는 소리에 묻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총 9명의 소방관이 매몰됐다. 새벽 4시 20분, 긴급 투입된 대규모 구조대가 철근과 건물더미에 깔려있던 3명의 대원을 구조했지만 김철홍 소방교를 비롯한 6명의 대원은 끝내 주검으로 되돌아왔다. 최고선임 박동규 소방장, 학구파 김기석과 박상옥 소방교, 현장 베테랑 장석찬과 결혼을 앞둔 박준우 소방사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틀 뒤 열린 합동 영결식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동료들과 유가족은 떠난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고, 6인의 소방영웅 앞에는 붉은색 구조복과 대비되는 하얀 국화꽃만 차곡차곡 쌓였다.
2006년, 서부소방서에서 이름을 바꾼 은평소방서는 희생된 소방관들의 동판조형물을 로비에 설치해 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손용석 멀티미디어 부장 st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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