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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아직 증후군(still syndrome)

입력
2017.03.0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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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의 가정을 방문하면 깊숙한 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50대 정도의 남성으로 그 댁 아들인 것 같았습니다. 근처 이웃의 말로는 회사를 오랫동안 쉬고 있다고 하더군요. 부모의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지요. ” 일본 수도권 지역 사회복지사의 목격담으로 일본 기자들이 고령화 현장을 찾아 기록한 책 ‘탈, 노후빈곤’에 나오는 얘기다. 일자리를 잃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중장년이 되어서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부자(父子) 공동파산의 위험에 처하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는 줄거리다.

▦ 일본은 1994년 고령사회(65세 이상 비중이 14% 이상)를 넘어 2005년에 초고령사회(20%이상)에 접어들었다. 일본의 관련 서적을 보면 노후파산과 부모자식 동반파산 등의 문제가 자주 등장한다. 일본 고령자 중 70%가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 가지만, 절반 이상이 최저생계비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생활고를 겪는 일본 노인들은 “차라리 죽고 싶다”는 얘기를 늘어놓는다. 2015년 11월 사이타마현 후키이시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 병간호에 지쳐 딸이 부모와 함께 차를 타고 강으로 뛰어든 사건은 초고령사회의 한 단면이다.

▦ 우리 사회에도 병원비 등을 감당하지 못해 치매에 걸린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고령화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학계와 국제기구 등에서는 ‘일본식 장기불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부쩍 많아졌다. 저성장 소비부진 등의 경제지표도 닮았지만, 고령화 진행속도는 일본보다 빠르다. 올해 말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최고인 49.6%로 일본(19%)의 두 배 이상이다.

▦ 경제학자이자 외교관으로 97세까지 천수를 누렸던 존 갤브레이스가 ‘아직 증후군(still syndrome)’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젊은이들이 “아직도 일하세요? 아직도 운동하세요? 아직도 글 쓰세요?”라는 따위 질문으로 괴롭힌다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자네는 철이 덜 들었구먼”이라고 따끔하게 응징하라고 주문한다. 오래 산다는 것이 반드시 축복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과연 병들고 빈곤한 노인들이 그들 스스로 힘만으로 여생을 책임져야 하는가. 이미 일본에 던져진 질문이지만, 우리에게도 성큼 다가오고 있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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