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연루된 우익학교법인 ‘국유지 헐값매입’ 파문이 정권 차원의 대형 스캔들로 번지고 있다. 문제의 오사카(大阪) 모리토모(森友)학원 이사장이 자민당 의원을 통해 로비를 추진한 정황이 제기되면서 사태가 가라앉기는커녕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아베 총리는 곧 해외순방 외교카드로 국면전환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인에게 군국주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 우익유치원 영상 폭로 이후 일본 민심이 어떻게 반응할지 자민당은 숨죽이고 있다.
모리토모학원이 초등학교 설립을 추진하면서 땅값을 평가액의 14% 수준인 1억3,400만엔(약 13억4,000만원)에 매입한게 사태의 골자다. 이에 따라 회계검사원(한국의 감사원에 해당)이 정보수집에 착수했지만 야당은 총공세를 펴고 새로운 팩트가 연일 추가되는게 현재 상황이다. 3일엔 아사히(朝日)신문이 자민당 참의원인 고노이케 요시타다(鴻池祥肇) 전 방재담당장관 사무소가 모리토모학원으로부터 국유지 매입관련 진정을 여러번 받았다는 내용이 기록된 보고서를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2013년 8월∼2016년 3월 25회에 걸친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의 상담 및 재무성의 회신 내용 등이다. 보고서에는 가고이케 이사장이 국가가 제시한 임대료가 비싸다고 주장하고, 재무국 담당자가 ‘전향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취지로 답한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봄철 외교일정으로 상황을 돌파할 구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오는 19~22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순방에 나선다. 또 내달 하순에는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17번째 정상회담을 추진중이다. 또 자민당 주변에선 내달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방일과 미일 경제대화가 일본의 국익이 걸린 중대사안이란 점을 어필해 정치권내 단결을 호소한다는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가에선 이번 우익법인 파문이 일방독주에 불만이 쌓인 아베 정권을 한꺼번에 허물수도 있는 작은 구멍같은 단초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당장 아키에 여사의 부적절한 처신과 이에 궤변으로 방어하는 아베 총리의 태도가 거슬린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문제의 초등학교 명예교장으로 위촉된데 대해 아베 총리가 “아내는 사인이다. 범죄자 취급하는 게 불쾌하다”고 공세적으로 맞서면서 때아닌 총리부인 공인(公人), 사인(私人) 논란을 낳고 있다. 국가공무원 5명의 보좌를 받고 총리부인 타이틀로 활동하는 인물이 사인이라는 것은 넌센스다.
무엇보다 우익유치원 아이들이 제국주의 교육칙어를 암송하는 모습을 지켜본 일본인들이 아베 정권의 우경화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주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지나친 우경화를 비판하는 일본내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커지고 아베 총리의 정치생명이 중대고비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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