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주류 언론의 대립이 점입가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류 언론을 ‘가짜 뉴스’ 생산자로 몰아붙이고, 언론은 한 치 양보도 없이 대통령을 공격한다. 주류 언론만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망칠 천하의 나쁜 인물이다.
그러나 길거리 민심, 특히 미국인의 70%를 차지하는 백인들 생각은 많이 다르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51% 미국인이 ‘언론이 대통령에게 너무 비판적’이라고 응답했다. ‘비판이 타당하다’는 비율은 41%에 그쳤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지 않은 사람들도 꽤 많이 그의 정책에 공감한다. 미국 기업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공장 해외이전을 막고, 제약회사를 협박해서 약값을 내리게 하고, 록히드마틴 등 방산업체 최고경영자(CEO)에게 으름장을 놔 F-35 전투기 가격을 대폭 내린 것에 열광하고 있다. 한 대학교수는 “트럼프의 언동은 싫지만, 시장이 실패한 구조적 문제를 풀어보려는 그의 접근법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미국 언론은 왜 그럴까. 대선 때부터 트럼프를 악으로 규정해 반대해 온 관성 때문일 수 있다. 트럼프 정책의 밝은 면 대신 문제점만 부각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가뜩이나 당파로 갈린 여론을 통합시키는 대신 오히려 분열시키고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측의 논리다.
미국 언론의 이런 행태에 대한 비판은 사실 10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선정적 보도로 미국을 제국주의 침략 전쟁으로 이끌기도 했고, 미국인의 관심을 대단치도 않은 일에 매달리도록 한 경우도 있다. 그렇게 민심을 오도하는 과정에서 언론은 자신들의 상업적 이익을 극대화했다는 비판이다.
1898년 2월15일의 미 군함 메인호 폭발 사건은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면 어떤 일이 터지는지를 보여준 최초 사례다. 당시 메인호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이 한창인 쿠바 아바나 항에 정박하고 있었다. 쿠바 거주 미국인 보호가 임무였다. 그런데 이날 오후 9시40분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해 승선 중이던 해군 400여명 중 260명이 숨졌다.
미국 언론은 스페인의 ‘기뢰’ 공격으로 몰고 갔다. 주전론(主戰論)에 앞장섰던 ‘뉴욕저널’ 같은 신문은 40만부이던 판매 부수가 100만부로 치솟았다. 전쟁을 반대하던 미국 정부도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 쿠바는 물론이고 필리핀을 손에 넣었다. 7년 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한국을 일본에 내주고 미국이 얻어낸 바로 그 필리핀이다. 결과적으로 당시 대한제국도 미국 언론의 선정적 보도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1976년 미 해군 조사단은 메인호 침몰은 선내 적재된 화약의 우발적 폭발에 따른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대서양 단독 비행의 영웅인 찰스 린드버그도 언론에 과잉 노출된 피해자다. 1927년 뉴욕-파리간 무착륙 비행에 성공하고 귀환했을 때 뉴욕타임스는 16페이지를 그에 관한 기사로 채웠다. 다른 언론도 마찬가지로 열광했다. 그에 관한 모든 게 미화되고 과장됐다.
5년 뒤 린드버그의 아들이 유괴되었을 때도 온 언론이 매달렸다.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실질적ㆍ구체적 뉴스 대신 온갖 사소한 일과 꾸며진 이야기로 가득 찼다. 유괴 사건이 어떻게 언론에 처음 알려졌는지, 누가 린드버그의 대변인이 돼야 하는지 등이었다. 린드버그 아들은 2개월 후 사체로 발견됐고, 오래지 않아 언론의 관심은 갑자기 쑥 없어졌다.
모두 오래전 얘기라지만, 미국 보수층에서는 언론 행태에 대한 불만이 여전하다. 전쟁이 터지면 앞다퉈 영웅을 만들어내다가도, 돌연 반전(反戰) 여론을 조성하는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격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한국에서도 언론의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후세의 학자들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 아무리 따져봐도 전망이 궁색하다.
조철환ㆍ워싱턴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