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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걱정 없고 회장ㆍ부회장 안뽑고… ‘협업하는 괴짜’ 학생들

입력
2017.03.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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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엔 맨발로 운동장 걷고

한달에 한 번 공연서 끼 발산 등

학생 중심으로 창의력 개발 도와

지난달 13일 서울 강남구 세명초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혁신학교 성과 토론에 참석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달 13일 서울 강남구 세명초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혁신학교 성과 토론에 참석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열 살 안팎의 초등학생들에게 학교 수업 진행과 동아리 운영을 맡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험을 전혀 보지 않고 학생이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내맡겨 둔다면 어떻게 될까.

경직된 한국 교육 시스템을 배경으로 상상한다면 물음표부터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통의 학교가 하지 않는 다양한 시도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협업하는 괴짜’를 탄생시키는 학교가 있다. 바로 올해 개교 5년 차를 맞는 서울 강남구 세명초다.

지난달 13일 세명초에서 학생과 교사, 학부모, 교육 전문가들 간 성과 토론회가 열렸다. 세명초는 입시 중심의 공교육체제를 바꾸기 위해 도입된 서울형혁신학교 중 하나. 줄 세우기식 교육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점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관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학생들은 정기적인 시험을 치르는 대신 수학ㆍ영어ㆍ국어 등 주요 과목의 단원평가만 보는데, 이 역시 사전 예고 없이 진행되는 데다 성적이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심지어는 회장, 부회장도 뽑지 않는다.

또래 간 경쟁이 없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감을 얻고 적성을 찾는다. 배움이 조금 느린 아이가 있다면 멘토교실이나 맞춤형 상담을 통해 친구와 교사가 발달을 돕는다. 비 오는 날에는 맨발로 운동장을 걸으며 감각을 키우고, 한 달에 한번씩 열리는 공연에서 아이들은 끼를 발산한다. 친구, 교사와 협력하고 창의를 발휘하는 습관이 학생들의 몸에 일찍부터 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2015년 일반 초등학교에서 세명초로 전학 온 문장혁(13)군은 “시험이 많고 야외활동은 거의 없는 이전 학교에서는 ‘즐겁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며 “성적으로 친구와 나를 비교하는 대신 같이 과제를 해내고 선생님께 자유롭게 의견을 전달하면서 학교가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세명초는 철저한 학생 중심 교육을 위해 교사의 행정업무 시간도 대폭 줄였다. 모든 교사가 행정 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행정업무팀(교사 4명)을 따로 만들어 전담토록 했다. 특히 교장, 교감을 중심으로 정책이 좌우되는 보통 학교와 달리 교사 각각의 의견을 반영한 운영을 목표로 토론 위주의 ‘교사 다모임’을 만들었다. 안희순 교사는 “2013년까지 근무하던 학교에선 교장, 교감이 정책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면서 “세명초에선 교사 간 수평적 토론이 가능해 획기적인 교육 시스템도 자주 탄생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학부모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없지는 않다. 혁신학교 시스템에 적응한 학생들이 일반 중ㆍ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뒤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부분 학부모들은 해가 갈수록 아이를 향한 믿음이 굳어진다고 한다. “예컨대 세명초를 졸업한 선배들은 중학교에 가서 선생님이 ‘해피(happy)’라는 단어 하나만 던져줘도 5~10가지 연상을 한대요. ‘행복한’이라는 원래 뜻 하나 정도 떠올리는 또래들과는 확실히 다른 거죠.” 구혜선(13)양의 어머니 강세진씨는 아이의 전학으로 학부모로서의 교육 강박증도 떨쳐냈다고 털어놨다.

“한국 교육 환경에서 아이들은 성적을 얻는 대신 감정과 성격을 버리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불안감이 큰 이유도 이 때문일 거예요. 앞서가는 ‘괴짜’가 되도록 아이들을 좀 더 믿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 학교 최관의 교사가 자신 있게 강조한 얘기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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