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릭스 : 개와 고양이의 영웅
토미 웅거러 글, 그림ㆍ이현정 옮김
비룡소 발행ㆍ40쪽ㆍ8,000원
고양이 도시의 산부인과, 아내도 남편도 고양이인 부부가 아기를 낳았다. “아들입니다!” 둘은 기뻐하며 아기를 들여다본다. “정말 귀엽죠?” 아내가 속삭이지만 남편은 당황스럽다. “이… 이 아이는 강아지잖소!” 독자도 당황스럽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기보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에 가까울 법. 하지만 그림책 속 산모는 아무렇지 않다. “그래서요?” 강아지 아이를 낳은 고양이 엄마의 태도에 당신은 점입가경을 느끼는가, 마음이 놓이는가?
고양이 신문들의 입장은 점입가경 쪽. “고양이 부부가 강아지를 낳다!” 대서특필이다. 다행히도 불륜을 상상하는 황색언론은 아닌 듯. “유전자가 드디어 미쳤다!” 아이 아빠의 입장은 더 다행스럽다. “할머니가 몹스 종 개와 연애를 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리고 이제 와서 그 후손에게… 자연의 변덕이지요! 그게 전부입니다!”
아기에게 ‘플릭스’라는 세례명이 주어지고, 개 도시에서 온 메도르 박사가 대부로 정해진다. 플릭스는 ‘다문화적’ 존재로 자라난다. 부모는 고양이의 언어와 나무 타는 법을 가르치고, 대부는 개의 언어와 헤엄치는 법을 알려 준다. 하지만 놀아주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 학교 갈 나이가 되자 부모는 플릭스를 메도르 박사에게 맡겨 강 건너 개들의 도시로 유학 보낸다. 주말이면 집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내던 플릭스, 하루는 산책 중 강물에 빠진 고양이 아저씨를 발견하고 헤엄쳐 구해 준다. 개의 자질이다.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 된 플릭스, 불이 난 여학생 기숙사 5층에서 살려 달라 외치는 푸들 아가씨 미르차를 나무를 타고 올라가 구해 준다. 고양이의 능력이다.
플릭스와 미르차는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플릭스는 개 도시에 쥐덫 체인점을 낸다. 그곳에서 덫에 걸린 쥐들을 사 모아 고양이 도시로 보내는 사업을 하여 성공한 플릭스, 이제 정치에 나서 새로운 정당을 만든다. ‘개고련 - 개와 고양이의 연합’. 개 도시와 고양이 도시를 통합하여 서로 존중하며 평등하게 지낼 것을 주장한 플릭스는 마침내 통합도시의 시장이 되고, 바로 그날 아내에게 기쁜 소식을 듣는다. “우리는 곧 셋이 될 거예요.” 균질의 사회에 이질적 존재로 태어나 좌절과 불행을 겪기 십상이었던 아이가, 성공과 행복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다. 무엇이 이를 가능케 했을까?
모든 이야기는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문제적 사건으로 삶의 균형이 깨어진 존재들이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이야기다. 거기서 우리는 우리 삶에 닥쳐오는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는다. 문제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운명적 문제’다. 고양이 사회에 강아지로 태어난 아이 - 이 이야기가 제시하는 운명적 문제는 그뿐일까? 이른바 ‘단일민족’의 사회에 이민족의 형상으로 태어나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 비장애인 세상의 장애인들, 동성을 사랑하는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들…. 이들이 모두 플릭스다. 무엇이 플릭스들에게 주어진 ‘운명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꿀 것인가?
이 이야기 속에는 최선을 다해 플릭스를 키우는 부모와, 최적의 조합으로 정해진 대부가 있다. 부모는 개인의 도리일 터, 대부는 사회 시스템이다. 그 바탕에, 태도가 있다. 개인의 도리든 사회 시스템이든 그것을 발전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확고한 태도 - “그래서요?”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개 부부, 플릭스와 미르차가 아기를 낳는 순간을 보여 준다. 아기의 첫 울음소리는 이렇다. “야옹!” 이제 우리가 말할 차례다. “그래서요?”
김장성 그림책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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