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온갖 정치적 외압을 받아온 검찰 조직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반갑다.”
2008년 12월30일 한국일보 김상철 사회부 차장은 검찰 수뇌부와의 갈등 끝에 사의를 표명한 임수빈 검사의 사연을 전하면서 그의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김 차장은 ‘임수빈 검사가 옳다’란 지면칼럼을 통해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의 주임검사인 임수빈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을 검찰 조직의 희망으로 봤다. 임 검사는 PD수첩 사건처럼 정치적 성격이 뚜렷한 수사를 맡느니, 20년 동안 몸담았던 검찰을 떠나는 길을 택했다. 법률가로서 원칙을 지키려면 그것이 최선의 길이고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그런 그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임 검사는 최근 펴낸 ‘검찰권 남용에 대한 통제방안’ 이란 제목의 서울대 박사학위논문을 통해 검찰권 남용의 실태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자기반성이자 검찰 조직을 향한 쓴소리를 가득 담았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정치검찰이라는 제한적 테두리를 벗어나 검찰 조직의 총체적 문제점을 화두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는 “검사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99% 차지하는 일반사건 처리에는 별 문제가 없고, 1%도 되지 않는 정치적 사건의 처리에 문제가 있어 검찰이 비판을 받아왔다고 치부했다. 그러나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위와 같은 생각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검사들이 문제라고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검찰권 남용이 업무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그로 인해 피의자나 참고인의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고, 이는 결국 검찰에 대한 불신의 벽으로 차곡차곡 쌓여왔다는 것이다.
임 검사의 논문을 읽다 보니 문득 표적수사의 폐해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전직 특수부 검사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활용했던 무자비하지만 효과적인 수사 노하우를 설명했다. 일반적 수사는 범죄단서가 발견되면 수사대상이 정해지는데, 표적수사는 타깃을 정한 다음 그물망 식으로 단서를 찾아 나선다. 여기 건드려보고 저기 찔러보는 식으로 혐의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수사를 끝내지 않는다. 검찰권 남용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전직 검사는 “회사를 망하게 한다거나, 가족까지 구속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효과적이다. 5곳만 하면 될 압수수색을 30곳까지 하고, 4명만 부르면 될 참고인을 20명씩 마구 소환해야지. 사돈의 팔촌까지 계좌추적을 하는 건 기본이다”고 했다.
그래도 막히면 별건 수사를 통해 피의자를 일단 입건한 후 회유와 협박이 들어간다. 특정인의 뇌물범죄를 파다가 도저히 답이 안 나오니까 30억 원 횡령 혐의로 구속한 후 뇌물공여를 실토하라고 압박을 넣는 식이다. 뇌물을 줬건 안 줬건 검사가 마음에 드는 진술을 해주면 횡령액수를 10억 원으로 줄여주거나 기소유예 처분을 해준다. 헌법에는 형사상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권리가 규정돼 있지만, 검사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라고 강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뇌물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먼지 하나까지 탈탈 털어서 죄값을 치르게 한다. 이런 수사방식에선 인권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피의자는 검사의 목표달성을 위한 실험대상일 뿐이다. 이는 검찰사건사무규칙에 명백히 반하는 검찰권 남용의 사례지만, 우수한 수사기법으로 전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적 모멸감을 느낀 피의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검찰 수사 중 자살한 사람이 100명이 넘는다.
검찰청법에는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 인권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수빈 검사는 논문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검찰을 현재의 모습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국민들의 인권이 함부로 침해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수사를 잘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 검사를 검찰 조직의 희망으로 봤던 김상철 선배는 안타깝게도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지금 그가 임 검사의 논문을 봤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임수빈 검사가 옳았다.”
강철원 사회부 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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