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거주 EU시민 권리 보장을”
협상 개시 법안 수정안 통과돼
여당 의석 비중 31%에 그친 탓
이달부터 협상하려던 구상 차질
영국 상원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협상 개시 법안을 일부 수정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수정안에는 영국에 남아 있는 EU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수정안이 상원을 통과하면서 하원은 재차 이를 놓고 표결을 벌여야함에 따라 3월 말로 공표했던 테리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 개시 시간표는 뒤틀릴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일간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은 “메이 총리의 첫 패배”라고 평가했다.
상원은 1일(현지시간) 노동당 소속 의원들이 발의한 ‘현재 영국 내 합법적으로 거주 중인 EU 시민과 가족의 권리를 브렉시트 이후에도 보장하는 확실한 방안을 법안 통과 3개월 이내에 내놓는다’는 조항을 브렉시트 협상 개시 법안에 삽입하는 안을 찬성 358표 대 반대 256표로 통과시켰다. 노동당(165명)을 중심으로 자유민주당(93명) 중립의원(크로스벤처ㆍ78명) 등이 수정안을 지지했다. 보수당 의원 가운데서도 하원의원과 농업장관을 역임한 더글러스 호그와 메이 내각에서 고용연금부 부장관을 지낸 로스 알트만 등 7명이 수정안에 찬성했다.
당초 하원에서 통과된 브렉시트 협상 개시 법안은 메이 총리에게 브렉시트 탈퇴 협상 개시권을 부여하는 짧은 ‘두 문장 법안’으로 돼 있었다. 그 외의 모든 사항은 EU와의 ‘협상 대상’이라는 의미다. 메이 총리 내각은 향후 EU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EU 시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예로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에 남기 위해 영주권을 신청한 EU시민들이 85쪽에 달하는 증명서 작성을 요청 받았으며, 취직하거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강제조항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여당인 보수당 의석(252석)이 전체 의석(804석)의 31%에 불과한 상원에서 브렉시트에 반대해왔던 노동당 의원들이 주도해 “EU시민의 권리를 약속하지 않는 개시 법안은 위험하다”라며 제동을 건 것이다. 안젤라 스미스 상원 노동당 대표는 최근 ‘영국내 EU시민의 권리보장을 우선할 수 없다’고 한 앰버 러드 내무장관의 발언에 대해 “도덕적으로 부끄러울 뿐 아니라 (EU시민들이 종사하는) 영국 산업에도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이날 주장했다.
상원은 EU시민 권리 보장 외에도 40여건에 달하는 수정 제안 검토를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는 “브렉시트 협상의 최종 결과가 상ㆍ하원의 구속력 있는 재검토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상원의 검토를 마친 수정안은 오는 13일 하원이 다시 검토한다. 물론 보수당이 주도하는 하원이 법안 수정을 거부하고, 원래 법안을 다시 상원으로 보낼 수 있다. 상ㆍ하원간 자존심 싸움이 벌어져 법안이 양원을 오고가는 ‘핑퐁’이 전개되는 동안 결국 메이 총리가 협상 개시 시점으로 설정한 3월이 지나버릴 공산이 크다. 메이 총리의 보수당 정부는 이렇게 되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메이 총리와 내각은 여전히 원래 법안이 통과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영국 상원의원들은 선거가 아닌 상속 또는 지명을 통해 선출되기 때문에 이들의 의견이 지닌 정치적 정당성은 크지 않아서다. 때문에 하원이 원래 법안을 다시 상원으로 보낸다 하더라도 상원이 막아 설 명분이 부족하다는 계산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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