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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신세계를 꿈꾸다

입력
2017.03.0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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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한 가지 물건을 말해보라면 단연 전기건조기야!” 친구는 비장하게 말했다. 해 잘 드는 자리를 찾다 보니 넓지도 않은 거실 한 가운데에 늘 빨랫대를 펼쳐놓아야 하고, 그게 거슬려 베란다에 널다 보면 걷기는 틀린 거다. 옷장이라 생각하고 베란다에서 하나씩 꺼내 입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건조기 이야기에 나는 솔깃했다.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친구의 말이 과장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이전에도 이 친구는 식기세척기를 두고 삶의 신세계가 열렸다고 말한 적 있다. 빌트인 식기세척기가 있지만 한 번도 써본 적 없던 나는 그 말에 혹해 당장 돌려보았다. 하지만 오래 쓰지 않은 식기세척기는 물만 쭉쭉 뿜어놓고 작동을 멈췄고 멋모르고 세척기를 열었다가 나는 주방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고치기도 귀찮아 식기세척기의 신세계는 그만 포기해버렸지만 건조기는 아무래도 혹한 마음을 이기기 어려워 홈쇼핑 채널을 한참 들여다보는데 친구가 또 조잘조잘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해준다. 세상에 2주에 한 번씩 소담하고 예쁜 꽃을 배달해준다는 거다. “진짜야. 그 예쁜 것들이 나를 그렇게 행복하게 해줄 줄 몰랐어. 인생이 달라진 것 같다니까.” 하아, 도대체 신세계는 왜 이토록 자주 생겨난단 말인가. 친구의 말은 정말 그럴 듯했다. 2주에 한 번씩 노랗고 붉은 꽃다발이 배달된다니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나는 건조기와 꽃다발을 동시에 포기했다. 아무래도 신세계는 쉼 없이 생겨나고 나는 파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샴푸나 주방세제만큼 책이 잘 팔리는 좋은 시절이 오면 그때나 한 번 신세계를 꿈꾸어봐야겠다. 당분간은 좀 참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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