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앞 패션문화거리
이대산학협력단ㆍ서대문구 공동
청년사업가에 1년간 무상 임대
“사업비 절감ㆍ새 아이디어 실현”
연세로 지하통로 창작놀이센터
미니콘서트ㆍ청년포럼ㆍ세미나 등
젊은이들 위한 다용도 공간 활용
현대백화점 앞 플레이버스
작년까지 팟캐스트 342회 녹음
“새로운 시도 위한 특화된 장소”
“서울 중심 노른자 땅에서 1년간 점포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죠. 1년에 약 1,500만원 정도 절감하는 셈이에요.”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정문 앞 골목에서 여성 패션브랜드 ‘천준우’를 운영하는 천준우(27)씨는 지난해 말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이태원 우사단로 등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핫’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서대문구의 ‘이대 패션문화거리 조성 사업’ 공고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2일 “임대료와 일부 인테리어 비용 지원 등으로 사업비의 60~70%를 절감하게 됐다”며 “사전 창업교육 등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원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980~90년대 신촌은 ‘새로운 마을(新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젊음의 상징이었다. 통기타 음악, 시국 비판 연극, 록과 힙합 문화가 자연스레 녹아 든 신촌에는 ‘변화’ ‘저항’ ‘활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신촌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와 홍대ㆍ합정 등 인근 상권의 부상으로 젊은이들 역시 신촌 거리를 떠났다. 대학문화를 대표하던 독수리다방이 문을 닫는 등 신촌의 상징물이 하나 둘 사라졌고, 그 빈자리를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식당, 휴대폰 판매점 등이 채웠다. 젊음이라는 특색이 사라지고 여타 지역 상권과의 차별성이 없어지자 새로운 유입 인구나 문화도 생겨나지 않았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신촌거리의 침체기가 계속 되자 서대문구는 2014년 지역활성화과를 신설했다. 신촌역 현대백화점ㆍ창천문화공원에서부터 이대역 대현공원 인근까지 총 43만6,800㎡에 이르는 지역에 ▦청년문화 ▦경제 ▦신촌하우스 ▦공동체 ▦공공기반시설 등 5개 분야 재생사업을 실시하는 것이 목표였다. 같은 해 12월 서울시 도시재생시범사업에 선정돼 4년간 총 100억원의 사업비도 추가로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젊은이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된 것이 이화여대 앞 골목(대현동 37, 56번지)에 조성된 패션문화거리다. 이화여대 산학협력단과 서대문구가 순수 구비 3억5,000만원을 들여 조성한 거리에는 20,30대 청년사업가 10명이 7개 점포를 1년간 무상으로 임대해 의류ㆍ액세서리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이 곳에서 의류 전문업체 ‘슬로플로’를 운영 중인 송원영(32)씨는 클라우드 펀딩을 받아 소비자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개발하는 등 선주문 방식으로 의류를 제작해 판매한다.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디자인을 기성복처럼 판매하는 새로운 시도다.
송씨는 “젊은 사람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데까지 많은 제약이 따르기 마련인데, 여러 가지 지원을 받아 현실에 반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패션문화거리에 입점한 10명의 ‘젊은 사장들’은 공동 브로슈어를 제작하고 합동프로젝트를 계획하는 등 자생의 길을 찾고 있기도 하다. 송씨는 “같은 거리에서 비슷한 환경을 공유하다 보니 정보교류가 활발히 이뤄진다”며 “1회성 인간관계가 아닌 꾸준한 교류가 가능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역시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패션문화거리가 기존 신촌이 가진 소비문화의 연장선이라면, 연세대 앞에 자리잡은 창작놀이센터와 현대백화점 앞 플레이버스는 창작문화의 변형이다. 연세로와 연세대를 잇는 54m거리의 지하통로는 20여년간 사실상 방치돼왔다. 이 공간이 지난해 7월부터 창작놀이센터와 창업카페로 새롭게 단장돼 미니콘서트, 청년포럼, 세미나, 창작기획회의 등 다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다양한 행사 형식에 맞춰 공간을 변형할 수 있도록 사방의 창을 모두 열었다 닫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난해 말까지 센터공동운영단의 정기프로그램 44회, 수시 프로그램과 시설대관 135회 등 일주일에 5,6회는 항상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들어찬다.
이날 오후에도 30여명의 젊은이들이 청년예술정책포럼을 열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송상훈(34)씨는 “그간 신촌에는 청년들이 지속적이고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거점보다는 소비를 위한 공간이 대부분이었다”며 “지역활동가를 육성할 수 있는 하나의 허브가 생겨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대백화점 앞에 위치한 플레이버스는 ‘팟캐스트’를 무료로 녹음할 수 있는 공간이다. ‘뉴미디어’가 신촌에 젊은 색채를 다시 입히고 있는 셈이다. 2014년 12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8개팀이 342회 녹음을 진행했고, 공모전(2회)과 공개방송(67회)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 곳에서 팟캐스트 ‘팔팔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는 이고은(32)씨는 “2014년 말 교육을 받고 2년 가까이 한 곳에서 녹음을 하고 있다”며 “새로운 시도를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특화된 장소”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신촌 골목 구석구석에 회춘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연세로 창천문화공원에는 2018년 청년문화전진기지가 조성될 예정이고, 창천동에는 올해 말 문화발전소가 건립돼 공연장, 갤러리, 세미나실 등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연세로에 위치한 예전 샤인모텔은 올해 청년창업자들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신촌의 이 같은 변화는 유동인구 증가와 인근 상권 활성화로 이어졌다. 연세로 시간당 보행자 수는 2013년 4월 기준 4,200명에서 ▦2014년 4,989명 ▦2015년 5,761명으로 늘었다. 연세로 상권 매출 역시 ▦2013년 4,102억3,700만원 ▦2014년 4,457억6,700만원 ▦2015년 4,673억6,500만원으로 증가추세다. 서대문구청은 “내년까지 233억3,200만원을 투입해 청년들이 마음껏 놀고, 생각하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가꿔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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