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스피 상승세로 공방 가열
신흥국보다 낮은 PER 둘러싸고
“기업실적 개선 중” 낙관론에
지정학적 불안ㆍ기업 지배구조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여전” 맞서
“한국 증시는 세계적으로도 저평가 상태다. 추가상승 여력이 충분하다.”
“만년 저평가엔 이유가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괜한 말이 아니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2,100선을 오르내리며 지수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해묵은 ‘한국증시 저평가론’을 둘러싼 공방도 다시 가열되고 있다. 각종 수치를 근거로, 우리 기업이 실제 가치보다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저평가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반면, 수년째 박스피(박스+코스피)를 벗어나지 못하는 증시가 “실은 실제 수준”이라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양측은 최근 증시 상황을 놓고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기준 국내 증시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전망치는 9.4배로 세계 주요 증시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PER은 기업의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낮을수록 주가가 저평가돼 있음을 뜻한다.
현재 ‘트럼프 랠리’를 펼치고 있는 미국 증시가 18.0배로 가장 높고, 일본(14.5배), 영국(14.5배) 등 선진국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인도(17.1배), 대만(13.2배), 브라질(12.2배), 중국(12.1배) 같은 신흥국 증시도 우리와 차이가 크다. 또 다른 증시 평가기준인 12개월 선행 주가순자산비율(PBR) 역시 우리 증시는 현재 0.96배를 기록 중인데, 이 비율이 1 미만이면 주가가 청산가치에도 못 미치는 ‘절대적 저평가 상태’를 뜻할 정도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줄곧 8~10배 사이에 머물고 있는 우리 증시의 PER에도 불구, 최근 주가가 상승세를 타자 “그간의 저평가 굴레에서 벗어나 재평가를 받을 기회가 왔다”는 낙관론이 한편에서 힘을 얻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어느새 고착화된 증시 저평가의 원인으로 박스피 주가에 더해, 기업들의 실적부진 장기화를 든다. 매년 마이너스 수익 증가율이 반복되고, 예상치를 밑도는 실적이 발표되면서 저평가 경향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최근 수출 회복을 동반한 기업들의 실적개선 조짐에 주목한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우리 증시의 PER은 항상 낮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투자 메리트가 없다고 보긴 어렵다”며 “오히려 최근 기업실적 개선이 저평가를 역전시킬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도 “PER은 증시 시가총액을 상장기업의 이익으로 나눠 계산할 수 있는데, 최근 지수 상승에도 PER이 여전히 낮은 것은 미래 기업이익의 증가 속도가 실제 지수 상승 속도보다 더 빠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저평가가 냉정한 우리의 현실이란 인식도 여전하다. 지정학적 불안,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등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우리 경제의 취약 요소가 만성적인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와 주주친화정책 등에 관심이 높은데 최근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대기업들의 치부가 이런 디스카운트 요인을 더 키웠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아시아 기업지배구조협회(ACGA)는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 순위를 아시아 11개국 중 8위로, 세계경제포럼(WEF)은 국가경쟁력평가에서 한국의 기업이사회 유효성을 138개국 중 109위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밖에 자국 기업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에 편입된 24개국 중 22위에 불과한 국내 상장기업들의 배당성향을 두고, “증시 평가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배당이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이창환 IBK투자증권 연구원)는 지적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소비 둔화와 성장률 하락 추세를 감안하면 저평가를 벗어날 강한 동력이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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