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3.2
“도대체 지금 우리나라는 여성들의 인권만 존재하고 가족 인권은 존재하지 않습니까.” 2005년 3월 2일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상정된 108건의 안건 중 가장 뜨거운 토론이 오고 간 것은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일부 개정법률안’이었다. 법사위 소속 최재천 의원의 “호주제를 폐지합시다”라는 일성 뒤에 이어진 찬반 토론에서 김용갑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한 저 주장은 지금도 여전히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그는 “호주제는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전통의 가족 제도”라며 “호주제 폐지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도 했다. 회의장에 앉아 있는 남성 의원들을 향해 그는 “속으로는 반대하면서 줏대도 없고 소신도 없이 일부 여성들의 주장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면서 “불편한 것 달고 다니지 말고 차라리 떼어 버리라”고 일갈했다. 결과는 찬성 161, 반대 58, 기권 16.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호주제는 2008년 1월 폐지됐다.
호주제는 한 집안의 가장을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의 출생 혼인 사망을 기록하는 제도다. 여기서 집안은 당연히 남성과 여성의 만남으로 이뤄지는 가정을 뜻하며, 그 가정의 호적상 주인은 남자다. 호주가 사망하면 지위는 장남, 기타 아들, 결혼하지 않은 딸, 아내, 어머니, 며느리 순으로 승계된다. 부계혈통을 우선하고 남아선호를 조장하며 이혼 가정, 재혼 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호주제는 1958년 법 제정 때부터 폐지 요구가 끊이지 않았으나,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하는 한국 사회가 그 요구를 받아들이기까지는 5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가정에서 다섯 살 난 아들이 어머니와 누나 대신 호주 자리에 오르는, 전설 같은 풍경이 불과 10년 전의 일이었다. “떼버리라”는 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나온 것도 이번 세기의 일이다.
김용갑 의원의 우려대로 이 나라엔 ‘가족의 인권’이 소멸하고 여성의 인권이 창궐하게 됐을까. 최근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이 저출산 해결 방안으로 내놓은 ‘고소득ㆍ고학력 여성의 선택적 결혼 경향 바꾸기’는, 짝 찾기와 대 잇기를 위해 여자를 ‘보쌈’했던 시절에서 몇 발도 나아가지 못한 현실을 보여준다. 여자도 선택할 수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깨닫게 하려면 우리 사회는 뭘 더 떼버려야 할까.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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