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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넘기는 꼰대로 찍힐라”… 후배 눈치 보는 상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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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넘기는 꼰대로 찍힐라”… 후배 눈치 보는 상사들

입력
2017.03.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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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면 인사평가 속속 도입되며

“업무ㆍ소통 능력 지적 받을라”

손수 엑셀 보고서에 야근까지

직장인 절반 이상 “스트레스”

“불합리 문화 개선” 긍정 평가

“선후배 정 사라져” 하소연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 부장 김모(48)씨는 요즘 야근이 잦다. 매주 임원회의 때 필요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맡겨도 될 부하직원이 8명이나 되지만 “차라리 내 몸 고생하는 게 낫다”는 것. 그는 “불과 1, 2년 전만 해도 손이 많이 가는 엑셀 작업이나 보고서 초안 작성은 후배들 몫이었는데, 요즘은 ‘업무를 떠넘긴다’고 싫어할 것 같아 어지간하면 내 손으로 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김씨는 오후 6시 ‘땡’ 하면 사라지는 후배들 뒷모습을 보면서, 혼자 저녁을 해결하고 밤늦도록 근무하는 날이 다반사다. 이도 모자라 주말엔 온라인으로 엑셀, 파워포인트 강의를 듣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상사 비위만 잘 맞추면 직장 생활의 반은 성공’이라는 속설은 옛말이 됐다. 부하직원 눈치 살피느라 전전긍긍하는 상사들이 늘고 있다. 28일 취업포털 커리어에 따르면 직장인 651명 대상 2014년 설문 조사에서 절반 이상(56.9%)이 ‘후배사원의 눈치를 봐야 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최근엔 그 비율이 훨씬 더 높아졌다는 게 직장인들 얘기다. 중소기업 부장 정모(51)씨는 “내가 상급자인지 하급자인지 헷갈릴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고 한숨을 쉬었다.

부하직원 눈치를 보는 상사의 증가는 ‘다면 인사평가’ 도입이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감히 상사를 평가할 기회조차 부여 받지 못하거나, 설령 평가를 한다 해도 그저 요식 행위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부하직원들이 상사의 업무능력, 통솔력(리더십), 소통노력 등을 평가하고 있다. 후배들 의견이 상사 인사고과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경우가 많아, “눈치를 안 보고는 회사에서 살아남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사내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직장에서의 고충을 털어놓을 온라인 공간이 활성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직장생활 20년 차인 한모(50)씨는 “예전엔 상사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주위 동료들과 함께 험담하고 말았는데, 젊은 세대들은 툭하면 온라인에 글을 올리니까 매사 조심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불합리한 사내문화를 없애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후배들을 대하는 규칙 아닌 규칙을 스스로 정했다”는 남모(42)씨는 “‘급하다’는 이유로 퇴근시간 이후에 업무지시를 내린다거나 회의를 소집하는 일은 최대한 삼간다”고 말했다. 회식 일정과 장소 등을 정하는 것처럼 업무와 관련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후배들에게 전권을 넘기기도 한다.

지나친 눈치보기로 인한 부작용을 경계하기도 한다. 한씨는 “‘퇴근 이후는 내 시간’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어 조금만 (사생활에) 불이익이 가면 못 견뎌 하는 후배들이 많다”면서 “팀워크의 중요성이나 책임감이 희석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소통을 원하는 건 후배들이 아니라 우리들(상사들)”이라며 ‘소통 부재’를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부장은 “예전엔 술자리나 저녁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선후배 간 정을 키워갔는데, 요즘엔 ‘회식하자’는 말 자체가 부담스럽고 ‘꼰대’ 소리 들을까 말을 아끼게 된다”고 토로했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눈치’의 다른 말은 곧 ‘배려’”라며 “선배들이 후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건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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