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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경험하는 삼성 자율경영 기회인가,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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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경험하는 삼성 자율경영 기회인가, 위기인가

입력
2017.02.2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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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28일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며 계열사 자율경영 시대를 열었다. 총수가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국내 기업 풍토에서 계열사별 자율경영은 이제까지 어떤 그룹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위험이 도사린 시도이지만 삼성은 ‘정경유착의 끈’을 자르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삼성의 어려운 도전은 확고한 총수 경영 체제인 다른 그룹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속전속결 미전실 해체는 이 부회장 의중

삼성이 이날 미전실 완전 해체를 포함한 짤막한 경영 쇄신안을 내놓자 미전실 직원들까지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당초 예상한 질서 있는 해체가 아닌 속전속결 해체이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 안팎에서는 경영 쇄신안 발표시점과 내용에 대한 추측이 무성했지만 발표 직전까지도 수뇌부 일부에서만 공유됐다.

특검 수사 종료일의 경영 쇄신안 발표에는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구치소를 찾은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등과 면담을 하며 미전실 해체를 서두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는 직원들이 겪을 혼란을 줄이기 위해 당초 계획보다 쇄신안 발표 시기를 앞당겼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총수 구속이란 사상 초유의 사태를 야기한 미전실을 해체해 정경유착의 싹을 자르고, 투명경영을 다지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등기이사 선임 이후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선진경영 시스템 구축을 강조했다.

기획ㆍ인사ㆍ홍보ㆍ대관을 총괄한 미전실이 해체되면서 삼성은 ‘그룹’이란 개념이 희미해졌다. 삼성은 그룹 인터넷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등 운영을 이날부터 중단했다. 수요 사장단 회의를 비롯해 신입사원 공채와 연수 등 그룹 차원에서 진행한 모든 업무도 사라진다. 삼성이란 브랜드를 함께 쓰는 계열사들의 각자도생만이 남았다.

전자ㆍ물산ㆍ생명의 ‘삼각편대’ 부상

삼성의 16개 상장사를 비롯해 59개나 되는 계열사들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의 자율 경영이란 시험대에 올랐다. 삼성SDI가 이날 정기주주총회소집이사회를 열어 삼성전자 DS부문 반도체총괄 메모리사업부장인 전영현 사장을 차기 대표이사에 내정한 것은 자율경영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그 동안 삼성은 연말에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일괄 단행했지만 지난해에는 특검 수사로 인사가 지연됐다.

자율경영을 시작하면 사업계획이나 인사, 채용 등에 있어서 계열사의 권한이 커지지만 책임도 무거워진다. 대표이사는 한정된 임기 내 실적과 주가로 응답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의 사업계획을 세우는 것이 힘들어진다.

이 때문에 기업 인수합병(M&A) 등 현안에 대해서는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이 관련 계열사들의 중심을 잡아줄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전자는 매출이나 인력 면에서 그룹의 약 60%를 차지하고,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등 전자 계열사들과 지분 및 사업 영역에서 밀접히 연결돼 있다. 삼성생명이 금융, 삼성물산이 바이오사업과 엔지니어링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면 현상유지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전 계열사 사장들이 모이는 회의는 사라져도 전자ㆍ물산ㆍ생명의 ‘3각 편대’ 별 회의는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연간 1만4,000명 규모였던 삼성 그룹 공채 폐지는 채용 시장에 불안감을 전해준다. 계열사별로 각기 다른 채용시스템을 시행하면 꼭 필요한 인력만 수시로 뽑게 되는 탓이다. 아울러 그룹 차원 사회공헌 활동도 없어져 삼성 전체의 기부금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삼성의 자율경영 앞길 험난

이사회가 중심인 자율경영은 글로벌 기준에 맞는 경영체제다. 하지만 모든 계열사들의 사정이 같지는 않다. 삼성전자처럼 체계적인 시스템 아래 막대한 영업이익을 올리는 탄탄한 계열사가 있는 반면 적자를 내는 계열사도 있다. 컨트롤타워가 비전을 제시하고, 현안을 통합하는 등 앞장서 이끌며 나오는 시너지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한 국내 기업들에는 특히 그렇다. 재계에서는 “미전실 해체로 그룹의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관 업무 폐지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기업은 법규에 따라 사업을 해야 하고, 정부와 공공기관은 법규를 시행한다. 입법 과정에서 현안을 건의하고 법이 잘못됐다면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해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상길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해체한 걸로 보이는데 조직의 자생성 측면에서 봤을 때는 어떤 형태든 새로운 컨트롤타워가 필요할 것”이라며 “사람을 바꾸고 시스템을 완비하는 쪽으로 변화를 줘야지, 아예 없애버리는 건 헤드램프를 켜지 않고 밤길을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도 논평을 통해 “미전실 해체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며 “그룹 전체의 시너지 효과를 위한 컨트롤타워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계열사와 이해관계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투명한 조직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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