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는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 비록 원했던 메달 사냥에는 실패했지만 세계 수준의 일본(0-3 패)과 대등하게 맞섰고 7전8기 끝에 중국을 꺾는 등 3승(1연장승) 2패로 4위에 올랐다. 과거 아시안게임 성적이 15전 전패에 그쳤던 참혹한 역사에 비춰볼 때 놀라운 성과다.
국내에 정규 팀은 단 한 팀도 없어 사연 많은 선수들이 많다. 그 중 연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한수진(30)은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아이스하키 스틱을 잡은 지 오래다. 2007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아 벌써 대표팀 11년 차다. 28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동계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단 환영 오찬 자리에서 만난 한수진은 “피아노를 언제 쳐봤는지 기억이 안 난다”며 “앞으로 1년간은 더욱 칠 일이 없지 않을까요”라고 웃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경험한 아이스하키를 잊지 못해 대학 졸업 후 스틱을 다시 잡은 한수진은 2011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알마티 대회에 이어 이번 삿포로 대회까지 두 차례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6년 전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조용히 입국장을 빠져나갔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당당히 어깨를 편 채 귀국해 환영을 받았다. 강 팀을 상대로도 ‘해 볼만 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척박한 환경 속에도 중국을 극적으로 꺾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한수진은 “중국을 이겼을 때 한국에서 ‘난리 났다’고 많은 연락을 받았는데 정작 우리는 실감하지 못했다”며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기쁨 뒤에는 모든 선수들이 목표로 했던 메달 획득에 실패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털어놨다. 실제 대표팀이 각양각색의 사연들로 주목 받은 것에 대해서는 “사실 부끄럽고, 쑥스러워 숨기고 싶다”면서 “그래도 이런 얘기들로 대표팀이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수진은 메달의 분수령이 됐던 카자흐스탄전 0-1 패배를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유효슈팅에서 30-21로 앞설 만큼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골 결정력 부재로 고배를 마셨다. 한수진은 “공식 경기는 아니었지만 지난해 전주에서 열린 친선전에서 카자흐스탄과 2승2패로 맞서 이번엔 꼭 이기고 싶었다”며 “(전날) 일본전에 많은 힘을 쏟았던 탓에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래도 일본전을 통해 우리가 성장한 것을 느꼈고, 남은 1년간 준비를 하면 평창올림픽에서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팀은 이번 주까지 짧은 휴식을 취한 뒤 다음주부터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에 들어간다. 여자 아이스하키는 4월2일부터 8일까지 강릉하키센터와 관동하키센터에서 올림픽 테스트이벤트로 치러지는 세계선수권 디비전 2 그룹 A(4부리그) 대회에 출전한다. 이 대회에는 하버드대 공격수 출신 랜디 그리핀(미국), 대넬 임(캐나다), 마리사 브랜트(미국)까지 한국계 3명이 합류해 전력이 한층 향상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한수진은 “국적을 취득한 3명의 선수가 아시안게임 규정 때문에 뛰지 못했다”면서 “테스트 이벤트 때는 이들이 합류해 ‘완전체’를 이룬다. 대회까지 한 달 남았기 때문에 세밀함을 더 보완하고, 2년째 우승 문턱에서 넘어가지 못했는데 이번에 우승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