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챌린지 스파크전과 핸즈모터스포츠페스티벌 아베오전, 두 경기를 놓고 참가 당사자인 나와 결정권자인 팀장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스파크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레이스가 가능하다”는 내 입장과 “원래 경차의 목적은 실용성이지 빠르게 달리는 게 아니다. 그래도 아베오 정도는 되어야 타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겁다”는 팀장의 주장은 평행선만 그을 뿐 조금의 차이도 좁혀지지 않았다. 참가 경기를 결정짓지 못한 채 시간만 계속 흘렀고 개막전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두 달 정도에 불과했다.
때마침 스피디움 ‘클럽 트랙데이’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직접 타볼 수 있는 스파크는 경주차와 거리가 먼 ‘무단 변속기’가 달린 모델이지만 서킷에서 직접 타 보고 참가 경기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번 클럽 트랙데이는 세 클럽으로 나누어 클럽마다 총 3세션씩 진행됐으며, 1세션당 25분이 주어졌다. 내가 속한 클럽은 ‘오토 미디어’. 폭스바겐 골프 8대, BMW 1M 3대, 쉐보레 아베오 3대를 비롯해 포드 머스탱 GT, 메르세데스-벤츠 A45 AMG와 E200, 현대 제네시스 쿠페, 아반떼 스포츠, 투스카니, 기아 프라이드, K3쿠페 등 다양한 차종 25대와 함께 달렸다.
스파크와 비슷한 성능의 차는 한 대도 없어 불안했지만, 주행 전 ‘무사고’가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 클럽만의 주행 규칙을 안내해주는 것을 듣고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인스트럭터는 ‘다양한 차종이 함께 달리다 보니 서로 속도가 꽤 다르다. 수시로 뒤를 확인하고 빠른 차가 다가오면 방향지시등을 켜고 레코드 라인 바깥쪽으로 비켜달라’며, ’코너에서는 서로 정신이 없으니 되도록 추월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드디어 스파크로 서킷을 마음껏 달려볼 시간이다. 처음 두세 바퀴는 트랙도 외울 겸 미리 머릿속에 담아온 레코드 라인을 떠올리며 천천히 주행했다. 선두 차량을 따라 달린 경험이 전부지만 이미 스피디움 서킷은 여러 번 달려봤고 트랙 형태도 미리 외웠는데 막상 혼자 트랙을 달리니 레코드라인이고 뭐고 다음 코너조차 어느 방향인지 생각 나지 않았다. 뒤쫓아오는 다른 차에게 계속 길을 비켜주기 바빠, 제대로 달리고 있는 건지, 여기가 몇 번 코너인지 인식조차 힘들었다. 마치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인스트럭터에게 스파크 주행 시범을 부탁했다. 흔쾌히 수락해준 인스트럭터에게 운전대를 내어주고 옆자리에 올라탔다. 스파크의 속도로 레코드 라인에 맞춰 서킷을 두세 바퀴 돌자 그제야 길을 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직접 주행해보려는데 LED에 빨간색 불이 들어왔다. 우리의 주행 세션은 끝났으니 피트로 돌아오라는 신호다.
돌아와보니 가장 좋은 기록은 2분 36초 050, 물론 인스트럭터가 주행한 기록이다. 다음 세션에는 이 기록만큼만 달려보자고 다짐했다.
두 번째 세션이 시작됐다. 이제 트랙도 파악했고 목표도 생겼으니 본격적으로 달려볼 참이었다. 당연하게도 함께 달리는 차 중에 스파크보다 최고출력이 낮은 차는 없다 보니 진입 직후부터 뒤에 오는 차에게 비켜주기 바빴다. 코너에서는 추월하지 않기로 했지만 코너가 연이어 이어지는데 계속 길을 막고 있을 순 없었다. 외워둔 레코드라인은 기록 단축을 위한 게 아닌 다른 선수들에게 길을 내어주기 위해 사용됐다.
한 무리의 차가 지나가고 드디어 전후방 시야에 다른 차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좀 달려볼까 싶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내리막 코너 구간에서 비켜주기 위해 속도를 너무 줄었더니만 오르막인 탈출 구간에서 아무리 가속 페달을 밟아도 속도가 붙지 않았다. 아, 고속도로 주행 시 답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속도를 함부로 줄이면 곧 후회가 밀려오던 일. 고저 차가 심한 서킷에서는 더욱 난감했다. 어렵게 속도를 높여가는 사이 또다시 한 무리의 차가 몰려왔다. 다시 속도를 줄이고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오르막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코너를 지나면 쭉 직선구간이 이어진다. 간신히 높여놓은 속도를 줄이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 속도로 충분히 통과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스티어링휠을 왼쪽으로 돌린 순간, “삐비비빅”하는 소리와 함께 속도가 줄어들었다. 스파크 2만3천km를 운행하는 동안 처음 들어본 차체자세제어장치 작동 소리다. 아쉬웠지만 스파크 스스로 사고를 막은 거라고 위로했다. 이어진 직선 구간에서 열심히 가속 페달을 밟았지만, 또 한 무더기의 차가 나를 앞질러 갈 뿐이었다.
2세션 최고 기록은 2분 39초 481. 섹터 별로 최고속도를 보니 제일 빠른 구간만 모아보면 3초 정도는 적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인스트럭터의 기록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어 1세션 기록을 확인해보니, 인스터럭터의 섹터 최단 기록으로 합해보면 4초는 더 줄어들 수 있었다. 씁쓸한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그래, 나만 다른 차를 피한 게 아니겠지”
마지막 세션, 한 번 더 스파크로 서킷을 달려 주행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욕심을 접어두고, 아베오 경주차 동승 체험을 선택했다. 참가 경기를 결정하러 온 만큼 두 후보인 스파크와 아베오를 모두 서킷에서 경험해 보고 싶었다. 비록 동승일 뿐이지만.
둘 사이의 최고출력과 최대토크 차이가 2배가량 된다지만, 이렇게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단순한 표현으로는 동승한 내 몸이 흔들리는 정도가 달랐다. 앞서 체험한 스파크는 경주차가 아니라 조심스럽게 주행했겠지만. 고려해야 할 다른 조건들이 있다 하더라도 가속 시 출력 차이는 확연했다.
스파크보다 빠른 아베오의 가속력에 마음이 ‘혹’했다. 가능한 한 좀 더 빠른 차로 서킷을 달려보고 싶었다. 스파크로도 재미있게 서킷을 탄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와서는 아베오로 마음이 돌아섰다.
대우 2세대 마티즈부터 기아 1세대 후기형 모닝을 거쳐 쉐보레 더 넥스트 스파크까지, 경차만 10년을 넘게 탔다. 그래서 더 경차로 레이스에 참가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더군다나 스파크로도 즐겁게 서킷을 누볐고, 실력이 부족해 아직 차의 한계 근처도 못 가봤다. 스파크 경주차는 내 기록보다 20초 이상 빠른 2분 15초대로 스피디움을 한 바퀴를 주파한다는데, 그 기록에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다. 출력이 낮은 차일수록 실수를 만회하기 어렵기 때문에 좋은 기록을 내려면 작은 실수도 없어야 한다. 운전자의 집중력과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경차로 좋은 기록을 낸다는 건, 더 어렵고 보람찬 도전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보다 앞서 조금 더 빠른 차로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더 커져버렸다.
전에 팀장이 했던 말들이 하나하나 다시 생각났다. ‘스파크는 경차라 중고가가 아베오랑 비슷하기 때문에 스파크라고 훨씬 적은 금액이 드는 게 아니고, 스파크를 서킷용으로 타는 사람은 그게 데일리카가 아니라 세컨카일 거다. 그러니 아베오가 더 경제적으로 경기에 참가하는 방법’이라고.
그래, 합리화는 끝났다. 핸드 모터스포츠 페스티벌 아베오 전에 나가야겠다.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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