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법대책TFT위원장)
새 정신보건법이 5월 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이 20여 년 만에 환자의 인권보호, 비자의 입원(강제입원) 요건강화 등을 골자로 전면 개정됐다. 하지만 개정된 정신보건법은 취지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19대 국회 회기 말 졸속 개정되면서 현장 혼란과 심각한 사회안전망 위험이 예상되고 있다.
새 정신보건법이 가장 문제되는 부분은 강제입원 기준이다. 강제입원은 ‘치료해야 할 정도로 정신질환이 있으며’, ‘자해나 타해 위험성이 있는 심각한 경우’의 2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가능하다.
법 개정에 참고했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강제입원 기준에는 위의 2가지 기준 중 하나만 충족하면 강제입원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자해나 타해 위험성이 있는 경우’는 본인이 거부해도 신속히 입원ㆍ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지 않아도 입원ㆍ치료해야 할 때가 있다. 자해나 타해 위험성은 없지만 병적 증상으로 인한 심각한 경제 손실을 가져올 때, 중독으로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병적 행동에 집착할 때 등이다. 예컨대 양극성장애의 조증(躁症)이 심해 잘못된 투자 등으로 거금을 탕진하거나 가정파탄을 일으켰을 때다. 이 경우 새 정신보건법이 시행되면 입원치료를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WHO가 제시한 ‘serious likelihood of immediate or imminent danger and/or need for treatment’의 and/or를 잘못 해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둘 다 해당되거나(and) 혹은 하나만 해당돼도(or) 입원 가능한 것을 의미하는 and/or를 and나 or 중 하나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이해해 and로만 한정한 법안을 통과했다. 한마디로 오류다.
더구나 현재 입원 중인 8만여 환자 가운데 절반 가량(4만여 명)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퇴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혼란이 불 보듯 하다.
강제입원 과정도 문제다. 새 법은 입원 3일 이내 환자 정보를 국립정신건강증진센터에 보고하고, 2주 이내 다른 병원(국공립병원이나 지정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2차 진단전문의)가 입원 타당성을 평가하며, 평가가 일치하지 않으면 즉시 퇴원시켜야 한다. 현실적으로 시행 불가능하고, 환자 인권 보장도 불충분하다.
해외에서는 강제입원과 관련, 전문의의 입원결정을 존중하고, 필요하면 72시간 이내 다른 전문의가 평가하고 있다. 이후 나라에 따라 2주~6개월 치료할 수 있다. 대신 불필요한 강제입원을 막기 위한 준사법적 독립기구에서 적합성을 평가, 전문의가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새 정신보건법은 이런 준사법적 기구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고스란히 2차 진단전문의에게 전가했다. 연간 25만 건 정도의 강제입원 평가를 국ㆍ공립기관 의사로만 시행하기엔 불가능하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민간의료기관을 모집해 2차 진단 전문의로 활용하겠다고 밝혀 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심사 받아야 할 민간의사가 다시 심사하는 이상한 모양새다.
복지부는 또다시 공보의를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새내기 의사인 공보의가 경험 많은 정신 전문의를 어떻게 평가할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복지부가 진정으로 환자나 보호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고민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신질환자가 대거 노숙자나 교정인구로 편입되는 파국적인 상황이 우려된다. 이를 막을 길은 새 정신보건법의 신속한 재개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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