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를 계속 못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방에 있는 짐은 다 버려주세요.”
19일 오전 서울 신림동 관악산 등산로에서 60대 남성 김모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20여 년간 자녀들과 연락을 끊고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 온 그는 세상을 등지기 며칠 전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저렇게 얘기했다. “추운 데 어딜 가시나, 날씨가 풀릴 때까지라도 계속 머무르시라”고 집주인이 답했지만 김씨는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가난으로 인한 미안함이 담긴 침묵, 그게 그의 유언이었다.
26일 서울 관악경찰서 등에 따르면 김씨는 경제적 곤란으로 넉 달치 월세를 미룬 상태였다. 관악구에 있는 4㎡짜리 ‘쪽방’이 그가 지난해 10월부터 보증금 50만원을 내고 살던 곳. 김씨는 월세 15만원을 내지 못하는 동안 집주인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안하다”고 했다. 이웃들은 김씨가 “다리를 다쳐 일을 할 수 없다”면서 방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전했다. 말 없이 혼자 술을 마셨고, 가끔은 복도에 들릴 정도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크게 외치기도 했다.
김씨가 감당했을 고독의 깊이는 그가 숨진 자리에서 경찰이 확보한 휴대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집주인과 건설현장 동료, 식당 전화번호 등 4개에 불과했다. 가족 연락처는 아예 없었다. 사망 후 몇 일이 지나도록 이웃들은 김씨의 사망 소식조차 알지 못했다. 통성명을 하지 않아 그의 이름이나 고향, 나이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20일과 23일 기자가 찾아간 그의 방에는 텅 빈 밥솥과 음식물이 말라붙은 냄비, 이부자리와 옷가지 20여 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김씨에게는 정부의 손길도 닿지 않았다. 물론 정부에 긴급복지지원을 요청했다면 생활비 30만원, 의료비 100만원 상당을 받을 수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김씨는 어떠한 지원도 요청하지 않았다. 김씨의 방이 주민센터에서 걸어서 5분(200m) 거리였지만, 정부가 먼저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관악구는 지난해 7월부터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제도를 시행하며 빈곤 위기가정을 찾아 나서고 있지만, 1만 가구에 이르는 동 전체 가구를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긴급복지지원 대상인지 여부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65세가 되면 전수 방문에 나서고 있지만 65세 미만 독거노인까지 모두 파악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61세로 생을 마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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