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서 시민 수천명 ‘마약전쟁’ 규탄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 시민들은 31년 전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피플 파워 혁명’ 기념일인 25일(현지시간) 도심에서 두테르테 정권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펼쳤다.
미국 CNN 방송 등에 따르면 필리핀 시민 수천명은 이날 마닐라 경찰청과 도심 거리 등을 점거해 시위를 펼치며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을 규탄했다. 시위대는 1986년 필리핀 국민 수백만명이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끌어내리기 위해 평화시위를 펼쳤던 마닐라의 한 고속도로에 모여 도심으로 행진했다. 국가적 기념일인만큼 정계ㆍ종교계 원로들도 참석해 시민들에게 힘을 보탰다.
반(反) 두테르테 시위대의 분노는 하루 전인 24일 필리핀 경찰에 레일라 데 리마 상원의원이 마약 거래 관련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되면서 격화하고 있다. 데 리마 의원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을 비판해 온 대표 인사다. 그는 체포 직후 혐의를 일절 부인하며 두테르테 정권이 자신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해 사법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데 리마 의원을 법무장관으로 기용했던 베니그노 아키노(57) 전 대통령도 시민 2,000여명과 함께 시위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아키노 전 대통령은 두테르테 정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검정색 상의를 입은 채 가두 행진에 나섰다.
일부 구역에서는 두테르테 대통령 지지자들이 맞불 집회도 열었다. 두테르테 대통령을 지지하는 청년 수백명은 마닐라 도심에 위치한 독립 영웅 호세 리잘의 추모 공간인 리잘공원에서 26일까지 철야 집회를 이어갔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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